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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여행]
새로운 맛을 찾아서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으려고 떠난 유럽여행

 

 

나는 어릴 적부터 다른 것에는 별 관심 없이 오로지 맛있는 것에만 눈이 반짝이는 아이였다. 친구와 만날 때도 ‘뭐할까?’ 보다는 ‘뭐 먹을까?’가 주된 주제였다. 어릴 적 우리는 농담처럼 “우동 먹으러 일본 갔다 올까? 만두 먹으러 홍콩 갔다 올까?” 하는 말들을 하곤 했는데, 지금 내 모습이 그때와 별다를 바 없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물론, 저렴한 비행기 표와 숙소를 구하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현실의 벽에 가로막히긴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떠랴. 맛있는 걸 먹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쾌락의 정점에 서는 걸!

 

 

이탈리아 로마, ‘파스타의 정답’을 찾아서

 

어릴 적에 파스타, 아니 엄밀히는 스파게티라고 하면 내겐 토마토소스와 크림소스로 만들어진 것들이 전부였다. 그것도 아주 흥건히 적셔진. 그러다 2010년 방영된 드라마 <파스타>를 보고나서 오일소스의 알리오 올리오와 조개소스의 봉골레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내가 알던, 먹어왔던 파스타들이 이탈리아 정통 스타일이 아니었다니, 대체 현지 사람들은 어떤 파스타를 먹고 있는 걸까. 특히, 크림소스의 대명사와도 같았던 까르보나라가 실은 본토에선 크림이 아닌 계란 노른자에 비벼져 나온다는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게다가 일반적인 베이컨(돼지 옆구리 살)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구안치알레(돼지 턱살, 볼살 등으로 만드는 이탈리아식 베이컨)를 넣어 만드는 것이 정통이라니, 지금까지 내가 먹어왔던 것들은 그럼 죄다 가짜였단 말인가. 혼란스러웠다. ‘파스타’의 정의를 새롭게 내려야했다.

 

 

 

 이탈리아 정통 까르보나라

 

그러기 위해선 이탈리아로 넘어가 진짜를 맛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흔히들 로마에 다녀왔다고 하면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바티칸 성당 등을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곳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그저 사람 사는 동네, 테스타치오로 향했다. 1936년에 펠리체 트리벨로니가 문을 연 ‘펠리체 테스타치오’에 가기 위해서였다. 자리에 앉아 고대하던 까르보나라와 이곳의 대표 메뉴 카치오 에 페페(양젖 치즈와 후추로 맛을 낸 파스타)를 주문했다. 까르보나라를 포크로 휘휘 감는데 “아, 이거구나!” 이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입에 한 입 넣는데 정신이 번쩍들었다. 이 맛을 알고 나면 한국에서의 크림 범벅일 뿐인 까르보나라는 무시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구나. 그저 이름만 같았을 뿐, 이건 전혀 다른 요리였다. 입안에 가득 차는 그 눅진한 맛에 포크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카치오 에 페페는 서버가 다가와 즉석에서 포크와 숟가락으로 휙휙 저어 소스와 면이 한 몸이 되게 한다. 그걸 포크로 돌돌 감아 한 입에 넣으니, 아, 이건 또 뭔가. 더 쫄깃하고 더 눅진한데 그만큼 입안이 너무도 황홀하다. 몇 포크질 안 했는데 벌써 빈 그릇이다. 이런 젠장, 진짜를 맛 봐버렸어.

 

 

프랑스 파리, 영혼까지 끌어 모은 감칠맛 폭탄, 비스크 수프

 

파리지엥 놀이 시절 가장 즐겨가던 단골집이 바로 파리의 대학로인 오데옹에 있는 ‘르 콩투와이’다. 예약을 받지 않고 12시부터 선착순 입장이기에 10분 전부터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 들어가곤 했다. 당시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젖먹이 새끼 돼지 요리. 그 쫄깃함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었기에 돌아서면 또 달려가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곳의 셰프가 비스트로노미의 창시자라 불리는 전설적인 셰프 ‘이브 깡드보르드’였던 것. 파리의 유명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들에서 수셰프(Sous-Chef)까지 지냈던 그가 오로지 맛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치장은 싹 걷어내고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내놓은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아 어쩐지 여기 음식은 실망하는 법이 없더라니.


요리를 공부하며 예전 추억이 생각나 오랜만에 다시 들렀다. 그리고 메뉴판을 보니 비스크 수프가 눈에 띄었다. 요리학교에서 갑각류 껍질을 일일이 다 벗기고 그걸 팬에 졸이고 또 졸여서 뽑아냈던 그 진액 말이야? 몇 kg나 손질하고 몇 시간이나 뽑아내도 얼마 나오지 않던 그걸 수프로 먹는다고? 서버가 테이블에 수프를 놓자마자 향이 나를 압도하기 시작한다. 한 스푼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감칠맛 바로 그 자체다. 식사와 곁들여 먹으라고 나온 빵으로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싹싹 긁어 먹었다.

 

 

 왼쪽부터 소뮈르 레드 와인, 비스크 수프, 새끼 돼지 요리 꼬숑 드 레

 

 

‘마카롱’과 ‘에끌레어’를 이을 프랑스 파리의 차세대 디저트

 

예전엔 파리에서 꼭 맛봐야 할 디저트라고하면 마카롱이 단연 1순위였다. 한국에서 맛없는 마카롱을 먹다가 파리, 특히 라뒤레나 피에르 에르메 등에서 마카롱을 처음 맛보게 되면 “세상에, 마카롱이 원래 이런 맛이었어?” 입안에서 살살 녹으며 콧소리가 흥흥 나오게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에도 맛있는 마카롱 집이 워낙 많이 생긴 데다 라뒤레도, 피에르 에르메도 모두 한국에 들어왔으니 더이상 마카롱은 파리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디저트가 아니다.

 

 

파리 브레스트 

 

그 뒤를 이은 것이 바로 에끌레어. 한국에 아직 투박한 것들 밖에 없던 시절, 파리에선 레끌레르 드 제니가 고급스런 에끌레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번개(에끌레어)처럼 먹는다’는 이름처럼 레끌레르 드 제니의 에끌레어들은 그 어떤 사람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젠 한국에도 실력 있는 파티시에들이 많은지라, 맛있는 에끌레어를 맛보는 것은 손쉬운 일이 돼버렸다. 그럼 더 이상 파리에서 굳이 디저트 맛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는 걸까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

 

파리는 역시나 한 발짝 더 나아갔다. 2009년에 필립 콘티치니가 문을 연 ‘라 파티스리 데 레브(꿈의 제과점)’는 각각의 디저트마다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개별 냉장 장치를 선보였다.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가 ‘파리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파리 브레스트’라고 극찬한 이곳의 파리 브레스트는 차세대 디저트로 감히 꼽아볼 만 하다. 파리에서 브레스트까지의 자전거 경주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이 디저트는 겉은 바삭한 슈이고 안은 프랄린 크림으로 가득 차있다. 매장에선 먹을 수가 없어서 몇 가지 디저트를 골라 포장한 뒤 인근의 카페 테라스 석에 앉아 디저트를 좌르르 펼쳤다. 주문한 커피와 번갈아가며 맛보는데, 아아, 너무 고소하다. 입안 가득 풍부함이 밀려온다. 입안에 계속 두고 맛을 느끼고 싶은데 사라지는 게 슬프다. 눈을 감고 지그시 음미한다. 지금 이 순간은 그 무엇도 필요 없다. 그냥 이거면 된다.

 

 

 

 

 

체코 체스키크룸로프, 안 먹고 지나칠 수 없는 체코식 족발, 콜레노

 

체코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체코 맥주와 콜레노. 쉽게 생각하면 체코식 족발이라고 보면 되는데, 우리나라 족발 요리처럼 삶는 방식이 아니라 바비큐처럼 구워서 나오는 형태다.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여를 달려야 도착하는 체스키크룸로프에는 바로 이 콜레노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할 수 있는 건 덤이다. 방문하기 전 아침부터 미리 이메일로 예약을 해놓고는 군침을 흘리며 프라하에서 달려갔다. 예약 시간보다 다소 일찍 도착한 탓에 배도 더 고프게 만들 겸 체스키크룸로프 성부터 시작해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한 맥주 양조장에 도달했는데, 구경하면 참 좋겠다 싶었지만 식당 예약시간까지 제대로 즐기기엔 무리였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숯불에 바삭하게 구워지고 있을 그 콜레노만이 우선순위였으니 양조장은 다음 기회로 미루는 걸로.

 

체코식 족발 콜레노

 

예약시간에 식당에 갔더니 테라스 석으로 안내해준다. 단 1초의 고민의 여지도 없이 콜레노와 흑맥주를 주문했다. 칼에 꽂혀 나오는 영롱한 그 자태를 보라. 쫄깃쫄깃한 속살에 바삭한 겉껍질이 입 안에서 같이 어우러지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거기에 풍부한 향이 곁들여진 흑맥주를 한 모금 하니 내가 세상 제일의 신선이더라. 예약을 하지 않아 군침만 흘리는 사람들, 그냥 지나가다 냄새에 모양에 홀려 한없이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음껏 즐긴다. 실컷 먹고도 만 원이면 충분하니, 이만하면 과연 ‘만 원의 행복’이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Writer·Photographer 이재호 <한입이어도 제대로 먹는 유럽여행>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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