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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여행]
골목을 따라 걸으면 시간의 길이 열린다

광주 양림동



집에서 나와 무작정 길을 걸었다. 피부에 닿는 따뜻한 햇살, 바람에 실려오는 봄꽃의 내음, 실타래처럼 늘어진 구름이 느릿느릿 흘러가는 날, 광주 양림동 골목 속으로 깊숙이 발을 들였다. 근대와 현대가 살포시 포개어진 그 시간 속으로.


근대가 남긴 자국들


광주 양림동은 한때 버드나무가 숲을 이룬 마을이었다. 그래서 버들 양(楊)에 수풀 림(林)자를 따 양림동이라 불렀다. 주변에는 광주천이 흐르고, 무등산이 둘러싸고 있다. 예로부터 목포에서 뱃길을 따라 광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터를 잡으면서 한옥, 서양식 건물,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이 있는 골목을 완성했다. 한 공간에 다양한 시간의 자국을 건축물로 조우한다는 점, 이것이 양림동 골목의 매력이다.



골목골목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쏟아지는 양림동.



양림동 전경. 뒤에 있는 산이 무등산이다.



건물에 번지는 따스한 빛의 파장


양림동의 중앙에 위치한 양림교회는 붉은 벽돌과 지붕, 청록색 첨탑이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1954년에 세워져 낡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교사 유진벨이 이곳에서 선교활동을 했고, 현재는 매주 예배가 열린다. 양림교회 옆, 회색 벽돌로 쌓은 오웬기념각은 양림교회보다 약 40년 일찍 지은 근대 건축물. 광주에서 간호사인 부인과 함께 의료봉사활동에 헌신하다 과로사한 선교사 오웬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


햇볕을 고스란히 흡수한 회색 건축물과 햇볕을 반사하는 구리 현판이 따스한 빛의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 잔잔하고 온화한 빛의 온도가 오웬 가족이 작은 나라의 남쪽 도시로 닿게 한 마음처럼 느껴졌다.



회색 벽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오웬기념각.






보이지 않는 양림동의 시간을 공간으로 나눈다면
아마 이쯤이 아닐까.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


오웬기념각에서 서쪽으로 걷다 보면, 양림산 자락에 있는 우일선(영어 이름 윌슨) 선교사 사택이 나온다. 1920년대 지어진 광주의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자 지역의 기념물이다. 그 옆으로 작은 오솔길로 산책하는 사람이 보여 가보니 뜬금없이 외국 이름의 길이 나오고 길의 끝, 외국식 무덤이 있다. 미국 남장로교회의 선교사 22인과 후손들의 집단 묘역이란다. ‘무덤이 웬 산책 코스?’하며 풍경을 둘러 보는데 눈 앞에 펼쳐지는 광주의 모습이 한없이 평온하다. 서쪽은 광주의 시내가, 동쪽은 무등산이 양림동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근대에서 현대로, 보이지 않는 양림동의 시간을 공간으로 나눈다면 아마 이쯤이 아닐까. 그렇게 한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헤아려본다.



오솔길의 끝, 선교사의 묘역이 있다. 그들의 여정은 태평양을 건너 이 작은 나라의 남쪽에서 끝났다.



무인카페 다형다방


다형다방이라. ‘다방’이 전달하는 정감 있는 어감이 좋아,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여는 미닫이문이 반갑다. 커피숍이라고 생각해 찾은 이곳은 다름 아닌, 양림동의 근대 문화 콘텐츠를 모아 놓은 공간. 커피를 좋아한 김현승 시인의 호를 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사람이면, 누구나 무료로 커피나 티를 즐길 수 있다. 대신 무인으로 운영되니 직접 타서 마셔야 한다. 산책 후 마시는 믹스 커피 한 잔의 여유. 달달한 커피 맛이 지금 내가 있는 시간이 언제인가를 잊게 해준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는 다형다방. 무인 카페로 운영 중이다.



Writer 온드림
Photographer 임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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