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라이프&스타일

[인터뷰]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 세월을 담그는

종부의 손맛

 



유구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종부의 삶을 받아들인 여인이 있다.

박세당 고택에서 40여 년째 푸근하고 듬직한 안주인의 역할을 해오는 김인순 종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도시한가운데서, 오래된 고택을 다듬고 정성스레 장독을 들여다보는
종부의 마음은 그 자체로 귀한 문화유산이다.


그저 내 몫이라 여겼던 종부의 삶



그저 내 몫이라 여겼던 종부의 삶

뒤로는 수락산, 앞으로는 도봉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양지바른 땅에 서계 박세당 반남 박씨 종택이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였던 박세당 선생이 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던 이곳에 최근 큰 경사가 생겼다. 지난해 100년 만에 첫딸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4대 만에 딸이 태어났어요. 손녀를 보면 ‘꽃 중에서 가장 예쁜 꽃은 인(人)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시집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할머니가 됐을까. 김인순 종부의 뺨에 가을바람이 살짝 스쳐갔다.
 

김인순 종부는 스물일곱 살이었던 1980년, 박세당 종가의 맏며느리로 시집을 왔다. 첫발을 내디딘 종택은 여러모로 어색하기만 했다. 종손의 직장이 서울에 있어서 막연히 도시에서 살게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더욱 그랬다. 결혼식도 일반 예식장에서 평범하게 치렀으니 말이다. 박세당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참배하고 집안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서툰 며느리는 점점 믿음직한 종부로 자라났다. 빨랫감을 이고 개울가에서 빨래를 했고 농사일이 바쁠 때면 새벽부터 밭일에 매진했다. 집안의 여러 어르신들을 초대해 상을 차리고 맛있는 장도 나눠드렸다.
 

이제 김인순 종부의 곁에는 싹싹하고 다정한 6년 차 차종부 조윤아 씨가 있다. 종부와 차종부에 이르는 박세당 종갓집 여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이끌어주고 지지하며 산자락 아래에서 이어지고 있다.


 



 

내 손이 힘들어야 입이 즐거운 법이야



박세당 선생은 종택에서 직접 농사를 지은 경험을 바탕으로 농학서 <색경(穡經)>을 썼다. 김인순 종부도 차종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약 9,917㎡(3,000평) 대지에 직접 농사를 지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논밭을 직접 가꾸지는 않지만 채소와 과일은 여전히 종부의 손에서 쑥쑥 자란다. 재료를 직접 기르고 일일이 손질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종부의 시어머니가 누차 강조했던 말 때문이다.
 

"내 손이 힘들어야 입이 즐겁다"라고 하셨어요. 귀찮다고 해서 대충 하지 말고 제대로 된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죠.

김인순 종부도 시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어느 하나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다. 이달 '대상(주) 종가집'에서 출시하는 ‘종부비법 흑보리 된장’에는 깐깐하고 고집 센 종부의 비법이 녹아들었다. 종부는 처음에는 흑보리라는 것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지인의 부탁으로 흑보리 한 가마를 구매한 것이 흑보리 된장이 탄생한 계기가 됐다.


 


 

종부비법, 흑보리 된장이 나오기까지 



 "흑보리 밥도 해 먹고 튀겨서 간식으로도 먹다가 장에 넣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예로부터 어머님들이 된장국을 구수하게 먹으려면 보리쌀을 삶아서 넣으라는 말씀을 하셨던 게 생각났지요. 음식을 맛있게 하려면 그 집의 장맛이 좋아야 해요. 어르신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장독대부터 찾았던 이유가 그거죠. 아침에 날이 좋으면 장독 뚜껑을 열어놓으며 정성을 들였습니다."

아직도 아궁이에 불을 때 콩을 삶고 몇 번이고 메주를 매달았다가 거두기를 거듭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김인순 종부. 종가집을 통해 종부의 비법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제 방식대로 흑보리 된장을 만들겠다고 하니 종가집에서 흔쾌히 수락했어요. 개인이 만들면 때로는 장이 짤 수도 싱거울 수 도 있는데, 종가집에서 일정하게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좋은 재료를 사용한다고 하니 과학적이고 균일해질 장맛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구수하고 고소한 종부비법 흑보리 된장에는 종부의 넉넉한 마음이 담겨 있다.



 


 
 

전통문화를 알리는 삶 



300여 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서 오롯이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고택은 종부의 손맛만큼이나 귀한 가치가 있다. 한국 전쟁 때 고택의 대부분이 소실됐지만 다행히 사랑채(경기도 문화재자료 93호)가 남아 종갓집의 고즈넉한 향기를 전하고 있다. 박세당 선생을 연구하는 사람들과 외국인 방문객, 고택이 궁금한 일반인들까지 1년에 약 1만 명이 이곳을 찾는다. 2013년부터 의정부시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한옥 고택숙박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힘에 부쳐 진행하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잊힌다'라는 마음으로 옛날 방식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김인순 종부.
 

"정월 대보름·어버이날처럼 때가 되면 300여 명 가까운 손님들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했어요. ‘보시 중의 가장 큰 보시는 음식을 나누는 것’이란 신념이 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것만 내세우지 않고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옛것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종부는 장독에서 손님들에게 선물할 된장을 한 국자 크게 떴다. 오랜 세월 묵묵히 자신의 몫을 받아들이며 사람들과 아낌없이 나눴던 여인의 삶이 구수한 된장 한 국자에 스며들었다.


 

 

 

Writer 박향아

Photographer 김현희


 

페이지 위로
알림

대상그룹의 건강한 소식지 <기분 좋은 만남>을 정기적으로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