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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여행]
꽃처럼 피어난 감성 제주, 고장난 길

제주 김녕 금속공예 벽화 마을



‘마을’이라 부르기에도 거창한, 소박하고 고요한 동네. 올레길 20번 코스 따라 이어진 ‘제주 김녕 금속공예 벽화 마을’은 해녀들의 애환이 담긴 금속공예 벽화를 좇아 사부작사부작 돌아보기 좋다. 느린 템포로 공존하는 동네 주민의 삶. 수만 가지 심상이 스치는 골목골목을 지나 해녀의 숨결을 맡으면 더 소리 없이, 더 깊숙이 걷게 된다. 이끌리는 감각에 맡겨둔 마음의 자리. 저무는 가을, 예술로 피어난 꽃길을 그리며 김녕의 시간 속으로 파고든다.



물질하러 가는 엄마, 우는 아이, 애처롭게 맞잡은 손


김녕 금속공예 벽화 마을은 해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벽화로 가득하다. 우는 아이 손을 떼놓고 물질하러 가는 엄마는 독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다. 짠한 벽화로 첫 걸음을 떼는 사이 해녀들의 일상이 묵직하게 차오른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나 역시 출근하는 엄마의 손을 놓지 못하고 얼마나 울었던지…. 그땐 엄마를 야속하다고만 느꼈는데, 훌쩍 어른이 된 지금은 우는 날 떼어놓고 간 엄마의 가려진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우는 아이 얼굴보다 차디찬 엄마 얼굴에서 먹먹한 슬픔을 읽는다. 다시 보이는 엄마의 손끝도 애처롭기 그지없다.






‘저승돈 벌러 감져’, 다사다난한 해녀의 삶


제주는 ‘해녀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김녕만큼은 그렇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살아 있는 유물. 그간 수차례 제주를 찾았건만 그들의 일상을 미처 헤아리진 못했다. 그때서야 돌담 너머 자리한 작은 집 마당에 물질 흔적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해녀들이 모여 사는 동네. 모르는 척 지나친 지난날의 고생사가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엄마로서 또 해녀로서 주름이 늘 때마다 자식들은 나이를 먹었다.


‘저승 돈 벌러 감져’라며 물속으로 뛰어든 김녕의 어머니. 할머니처럼 늙어버린 얼굴엔 어머니를, 잠수복 입은 얼굴엔 해녀를 담은 대형 벽화는 오늘도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들의 인생 다큐멘터리 같다. 흙길 한 모퉁이를 장식한 치명적인 오라. 장렬하게 지는 태양이 마지막 빛줄기를 쏟아내며 위대한 순간을 만든다.







원더우먼으로 변신한
기운 센 해녀부터
상상 속 제주의 돌고래까지
재치 넘치는 예술 작품이
끝없이 따라온다.

 



모퉁이 따라 한없이 빠져드는 예술의 향연


올레 20번 코스를 따라 걸으면 금속공예 갤러리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앙증맞은 고양이들이 무리 지어 골목대장 놀이를 하고, 원더우먼으로 변신한 기운 센 해녀부터 상상 속 제주의 돌고래까지 재치 넘치는 예술 작품이 끝없이 따라온다. 낚싯대와 물고기 조형물 사이 아무렇게나 걸쳐진 주민의 작업복마저 아티스틱한 풍경. 예술과 마을의 삶이 맞닿은 그 모습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넌 참 예뻐, 나에게 해주고픈 한 마디


어느 작은 카페 유리창에 쓰인 ‘김녕, 넌 참 예뻐’. 자꾸만 그곳에 발길이 머물다 가슴 속에 그 말이 콕 박힌다. 누군가 나에게 ‘넌 참 예뻐’라고 이야기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해녀들에게 ‘참 예쁘다’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었을까. 괜시리 미안해진 나의 젊었던 엄마에게,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가는 나에게 ‘참 예뻐’라고 말해주고픈 하루였다.


 




Editor 전채련 

Writer & Photographer 김유정 여행기자
10년 가까이 여행을 일로 삼은 여행기자지만, 여전히 열렬하게 여행을 사랑한다. 여행기자를 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두근두근 여행 다이어리 북 시리즈> 홍콩, 뉴욕, 오사카·교토, 런던, 이탈리아, 호주, 도쿄, 방콕 등을 집필했다. 소설을 좋아해 소설 배경지를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30여 곳을 다녀와 현재 ‘소설 여행 책’을 쓰는 데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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