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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교육]
아이와 떠나는

여행의 기술



하늘이 맑은 주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 사이로 가족 나들이객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언젠가부터 여행은 생활의 일부가 됐고,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은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아이들과의 여행만큼 영롱한 추억이 있을까?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여행의 기술에 대해 알아본다.




여행의 이유를 발견하는 여행


아이들과의 여행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그 첫 번째는 갯벌과 꼬막이 유명한 전남 벌교로의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벌교의 제철 먹거리인 꼬막을 신나게 먹었고 필자는 유년기 여행의 이유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벌교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선생이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꼬마 조정래는 벌교 골목에서 흙장난하고 할머니들 이야기를 귀동냥했다.


30년 후 유년 시절의 추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연재하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10권의 대하소설이 되어 200쇄를 넘기며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태백산맥> 출간에 가장 놀란 사람은 조정래 선생의 할머니였다. 몇 년 살지 않은 벌교를 어찌 그리 잘 묘사했으며, 벌교 사투리는 또 얼마나 차지게 구사했는지 놀랐다고 한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흡수해 그 느낌과 기억을 평생 가져갈 감성과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다고 한다.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이 몸 구석구석에 잠재해 있다가 필요한 때에 끄집어내어진다. 조정래 선생이 걷던 길과 돌아보던 골목을 다니며, 그때 그 사투리를 들으며 <태백산맥>의 문장들을 떠올렸고 그러면서 아이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를 온몸으로 느꼈다. 멋진 풍경, 신선한 바람, 따뜻한 사람과의 만남은 우리 아이들에게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을 말이다.




여행이 주는 예기치 않은 선물


또 한 곳은 영덕의 강구항이다. 딸아이가 아빠에게 귓속말하니 아빠는 눈을 찡끗하고는 좌판에서 회를 떠 가지고 왔다. 좌판 할머니는 검은 비닐봉지 하나에 막회를, 다른 하나에 초고추장을 담아주셨다. 나무 그늘에 차를 세우고 문을 활짝 열어젖힌 채 아이들은 회가 들어 있는 비닐봉지에 초고추장을 짜 넣고 마구 흔들어댔다. 그러고는 손으로 회를 집어 먹기 시작했다. 손과 얼굴은 초고추장 범벅이 되었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까르르 웃어댔다. 문득 필자와 눈이 마주친 딸아이는 “엄마, 너무 행복해”라고 말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순간 멍해졌다. 비싸고 좋은 것을 해주어야 아이들이 행복해할 거라는 무의식이 기습 공격을 당한 듯 당황스러웠다. 멋진 장소에서 공주와 왕자처럼 대접받는 것보다 사랑을 나누고 마음이 통하는 걸 느낄 때 아이들은 행복을 느낀다. 이렇듯 여행은 예기치 않은 순간, 예기치 않은 ‘어떤 것’을 선물해준다. 역사적 지식과 정보를 확인하고 외운 것은 얼마 가지 않지만, 가슴 뜨끈하고 행복했던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또 행복한 기억이 많은 아이는 자존감이 높고, 자존감 높은 아이는 배려심이 많고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여행은 ‘구경’이 아니라 그러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공유해야 할 공정여행의 의미


그렇다면 여행이 아이에게 무조건 좋기만 한 걸까? 부모의 여행 패턴과 가치관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학습되기에 바람직하지 않은 여행은 오히려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와의 여행에서 지금까지의 여행관이 어떠했는지 ‘공정여행’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공정여행은 ‘공정무역’에서 파생된 개념이다. 커피 유통 과정에서 수익 대부분을 다국적 대기업이 가져가며 커피를 재배한 사람들은 노동 착취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공정무역(Fair Trade)’이라는 개념이 대두됐다.


공정여행 역시 소비자로서 즐기는 여행에서 초래되는 환경오염, 문명 파괴, 낭비 등을 반성하고 현지 주민들과 공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방의 섬이나 농촌 마을로 가족 여행을 갈 경우, 대형 할인마트에서 여행 기간 사용하고 먹을 물품을 모두 구매한 후 현지에서는 쓰레기만 두고 오는 경우가 많다. 또 단체 관광을 갈 경우, 구획화된 관광명소를 구경한 후 단체가 동시에 먹을 수 있는 대형 식당을 이용하고 호텔이나 콘도에 묵는다.


여행객으로서 아름다운 경치와 유적을 보고 즐기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지만 정작 해당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여행사, 대형 식당, 숙소 모두 외부인이 투자해 수익 대부분을 가져가고 현지에는 불편만 남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의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지역의 자연과 공간을 이용하면서 정작 그곳에는 피해만 입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이와 여행할 때 나의 즐거움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는 않는지 공정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생각해보자. 프랜차이즈보다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와 현지 시장, 가게를 이용하며 현지 주민과 소통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그곳의 환경을 보호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도록 말이다. 또 특정 문화에 편견을 가지지 않고 로컬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많은 곳’을 간 것이 아니라 ‘제대로’ 즐겼냐가 더 의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간한 국민 여행 실태 조사보고서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여행 경험률은 90.1%에 달한다(2017년). 여행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우리 모두 이런저런 여행을 하고 있지만, 어떤 마음으로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과 중심이 필요한 때다. 특히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과의 여행에 있어서는 말이다.






 Tip   여행의 목적에 따른 추천 테마 여행지
아이들의 관심사는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이 달라지기도 하고 새로운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 모험을 서슴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아이의 취향을 반영해 여행을 계획할 수 있는 추천 여행지를 소개한다.


꿈이 많은 아이, 직업 여행하기 좋은 장소

고래연구학자(해양생물학자) |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탐사선, 반구대 암각화
항공우주전문가  |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공룡학자 | 해남공룡박물관, 고성공룡박물관
건축가 | 제주 건축물 기행, 서울 건축물 기행
과학자 | 서울 LG사이언스홀, 아산 장영실과학관

역사 속 인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지

충남 예산 | 추사 김정희(추사 고택, 추사 기념관, 추사 김정희 묘)
경기 수원 | 정조 임금(수원 화성, 융건릉, 용주사)
경남 의령 | 홍의 장군 곽재우(충의사, 정암진, 의병길)

새로운 공간을 좋아하는 아이, 제주 건축 여행

섭지코지  | 안도 다다오의 ‘유민미술관(지니어스 로사이)’과 ‘글라스 하우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의 ‘아고라’
한라산 중산간 | 이타미 준의 ‘제주 비오토피아(돌미술관, 물미술관, 바람미술관, 두손미술관)’와 ‘방주교회’
서귀포  | 승효상의 ‘추사관’






이동미 여행작가
아이들과 가족 여행을 해온 15년 차 여행작가다. 2011년에는 <여행작가 엄마와 떠나는 공부여행>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다. 문화콘텐츠학 박사이며 현재 안동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엄마표 아이여행>, <교과서 속 인물여행>,  <서울의 숨은 골목>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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