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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맛 기행]
묵을수록 더 맛있어지는

자연 발효 간장

 


 

간장을 만들기 위해 콩을 삶고, 메주를 띄우고, 발효하는 일정의 과정은 감칠맛을 얻기 위함이다. 감칠맛이 있어야 단맛, 짠맛이 조화를 이뤄 맛이 완성된다. 발효만 막 끝낸 간장은 초급 수준의 조미료다. 여기에 숙성 시간이 더해질수록 간장은 깊은 향과 맛을 가지게 된다. 과학으로 발효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한 간장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유혹해도 시간의 맛을 아는 이들은 무시해버린다. 왜? 맛을 알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어도 2년, 3년 동안 쌓인 향과 맛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다.



간장의 맛은 좋은 콩에서 시작된다


1971년생인 필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삶은 메주콩 맛이 또렷이 남아 있다. 겨울 방학을 시작할 때 즈음이면 엄마는 메주를 만드셨다. 아침에 학교 갈 때 밤새 불린 콩이 있으면 학교를 파하자 마자 집으로 쏜살같이 돌아왔다. 1년에 한 번, 삶은 메주콩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먹으면 고소한 맛만 있지만 여기에 설탕 한 숟가락 넣고 비비면 고소함에 단맛이 더해져 맛이 좋았다. 다 먹고 나면 메주와 겨울 방학 내내 퀴퀴한 동거를 했다. 따뜻한 아랫목은 메주 차지였다. 어느 정도 지나면 차가운 아랫목으로 메주는 쫓겨났다. 그렇게 한 달 보내면 메주를 장독에 켜켜이 쌓고는 물과 소금을 더해 몇 개월 발효의 시간을 가지면 비로소 장이 됐다.


된장이든, 간장이든 좋은 콩이 시작이다.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메줏가루에 고춧가루와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다. 수많은 콩의 종류에서 겉은 노란빛이지만 속이 하얀 백태로 장을 만든다. 사람들이 장을 만든 이유는 딱 하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콩마다 단백질 함량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100g당 40g 정도 함유하고 있다. 40g의 단백질이 장맛의 핵심이다. 콩을 불리고 삶음으로써 딱딱했던 콩은 부드러운 물성을 가진다. 수분도 적당해 미생물이 자라기 딱 좋은 환경이 된다. 습도, 온도, 영양분 삼박자 갖춘 환경에서 미생물은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세포 분열을 왕성히 한다. 이 과정에서 미생물이 만든 효소가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리한다. 아미노산은 20종, 종류에 따라 단맛, 쓴맛, 감칠맛을 내기도 한다.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은 콩나물에 많은 아스파라긴산(Asparagin acid)이나 감칠맛의 대명사 글루탐산(Glutamic acid)이다. 발효를 통해 단백질은 아미노산이 되기에 간장은 감칠맛을 품은 조미료가 된다. 





발효만 막 끝낸 간장은

초급 수준의 조미료다.

여기에 숙성 시간이 더해질수록

간장은 깊은 향과 맛을 가지게 된다.




된장과 간장 사이, 장 가르기


장이 얼추 되면 간장과 된장을 가르는 것을 ‘장 가르기’라 한다. 된장에서 간장을 많이 빼면 된장의 색이 밝다. 간장을 덜 빼면 강원도 막장처럼 검은빛을 띤다. 장단점이 있다. 간장을 덜 빼면 짠맛이 도드라지지만 된장의 감칠맛이 좋다. 밝은 된장은 덜 짜고 맛이 가볍다. 장을 가르고 나면 비로소 각각의 장 만들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메주를 만들고, 소금과 물을 넣고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반문할 것이다. 예를 들어 메주에 소금과 물로 발효한 것은 빵 만들기에서 반죽 만든 것과 같다. 반죽한 것을 자르고 모양을 만들어 틀에 넣고 구워야 빵이 되듯 가른 장을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을 두어야 비로소 장의 품격을 갖춘다. 햇것이 좋은 것이 꽤 있지만 장만큼은 묵을수록 맛있다. 장을 가르면 된장은 장독에 넣고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


간장은 된장과 달리 한가지 공정이 더 있다. 바로 장 끓이기다. 장을 끓이는 것은 보존력을 높이는 것도 목적이지만 달이는 과정에서 ‘메일라드 반응’이라는 갈변 반응이 일어난다. 간장의 색이 진해지고 수많은 향기 성분이 생겨나 풋내가 나던 햇간장이 진한 향을 띈다.


장독대가 있는 곳은 해가 잘 드는 곳이다. 햇빛으로 유해 미생물을 살균하기 위함이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들은 장마철만 되면 전전긍긍이었다. 해가 좋을 때 장독 뚜껑을 열어 살균하고, 소나기라도 내리면 서둘러 뚜껑을 닫곤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속담은 살균을 위해 뚜껑을 열 때 파리가 알을 까는 걸 보고 나온 속담이었다. 유리 뚜껑이 만들어진 이후로는 사라져야 할 속담이 됐다. 뚜껑 열 일이 없기에 파리가 알 낳을 일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신형 공장에서는 자외선 램프가 햇빛을 대신한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발효 간장의 맛


한반도는 예전부터 많은 종류의 콩이 자랐다. 콩이 많이 나기에 장 문화가 발달했다. 콩 단백질을 활용하는 것으로 장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두부다. 좋은 콩으로 만든 간장과 두부의 조합은 서로 뗄레야 떨 수 없는 맛은 조합이다.


전주 함씨네 두부는 태광, 대원 콩으로 만든 두부가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좋은 콩을 다루는 곳이니 장 또한 두부만큼이나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좋은 콩으로 만든 두부와 묵은 간장의 조합은 참기름 따위의 고소함이 낄 수 없는,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소함이 있다.


특히 간장에 장석(醬石)이 생길 정도로 오래 묵은 간장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간장을 장독대에서 몇 년 묵히면 녹아 있던 소금이 시간의 무게에 누려 다시 결정된다. 녹기 전에 하얗던 상태가 아닌 간장 맛을 품었기에 흑수정처럼 밝게 빛나는 검은색을 띤다. 장석은 갈아서 소금처럼 쓰기도 하고 쿠키나 다른 음식의 맛 내기 재료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발효 간장을 먹어야 하는 이유


발효 간장은 근대로 오면서 변화를 맞이한다. 집집마다 직접 간장을 담가먹기 어려워지자 식용염산으로 콩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해 짧은 시간에 뚝딱 만든 값싼 산분해 간장이 일본에서 들어오게 된 것. 결국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증가한 1990년대가 돼서야 다시금 고유의 자연 숙성 간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7년, 대상은 ‘햇살담은’이라는 브랜드명을 앞세워 100% 자연 숙성 간장을 선보인다. 일본에서 건너온 산분해 간장을 버리고 자연스레 시간을 들여 맛을 낸 발효 간장을 먹는 문화를 선도한 것이다. 그 진정한 맛을 우리 국민들은 놓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과학으로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긴 시간 동안 쌓인 향과 맛은 결코 따라 할 수 없다.





Writer 김진영 푸드 칼럼니스트
25년간 식품 MD로 활동하면서 식재료 산지를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빈 전문가. 여행과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접목해 바른 식재료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행자의 식탁’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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