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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교육]
사춘기 아이,

불통이 오히려 기본이다


 

부모는 답답하다. 아이가 말을 안 듣고, 힘들게 하고, 부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답하다. 청소년들도 답답하다. 부모들은 요구하고, 기대하고, 터무니없이 주장해서 답답하다. 그래서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에 관해서 모두 힘들어한다. 속이 터진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한두 집이 아니다. 많은 집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너무나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은 오히려 염려해야 할 예외적인 현상이다.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불통의 시기


사춘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라면 이구동성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그러므로 안도해도 좋다. 반면 너무나 대화가 잘 소통된다고 하면, 생각할 바가 오히려 많다. 너무 조숙한 것은 아닌지, 너무 억압적인 것인 아닌지, 너무 위선적인 것은 아닌지 등. 청소년기에 들어서면서 생기는 이런 단절은 어쩌면 발달과정 상의 당연한 현상이고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당연함의 시기는 대략 2~3년이고, 길면 4~5년이고, 만일 이 시기에 너무 극단적인 결과가 벌어지면, 그 시기가 알 수 없을 정도로 연장될 수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도날드 위니캇(Donald W. Winnicott)은 이런 단절의 당연함을 수차례 강조했다. 이런 불통은 성장의 과정이고 어느 정도는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불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견디느냐가 관건이다.





불통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 4가지


이 대목에서 부모들의 대응 전략이 달라진다. 진료실에 와서 말하는 부모들의 전략은 대략 이런 갈래로 나뉜다. 첫째, 어떻게든 굴복시켜서 말을 듣게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이 없느냐 하는 사람들, 둘째, 이제는 대충 포기했지만 어디까지 포기해야 하느냐를 상의해오는 사람들들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포기하고, “어디로 보내고 싶은데, 좋은 곳이 없냐”는 부모도 있다. 셋째, 자녀가 힘들지 않기 위해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 겪어내고 싶어하는 부모들도 있다. 끝으로 가장 많은 분들은 이렇게 지지고 볶다가 아이가 언젠가 어른이 될 것임을 믿는 분들이다. 다만 지지고 볶는 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적게 주고받기를 기대할 뿐이라는 입장의 분들이다. 가장 건강하고 상식적인 반응으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런 입장이다. 그렇게 우리도 컸고 아이들도 크고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이 네 번째 입장을 견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아이에 대한 믿음, 부모 자신에 대한 믿음이 비록 지지고 볶지만 넘어서지 말아야할 선 앞에서 멈추게 만든다. 그리고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에 만족하게 한다. 사춘기 아이들과 지내기를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갖기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첫 번째 유형의 부모는 절대 아이를 믿을 수 없고, 아이를 아직도 어린 아이라는 입장에 서서, 아이의 성장과 주도권을 인정해줄 수 없어서 힘들다. 이런 부모는 아이를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로 보는 것이다. 아이의 격렬한 투쟁 대상이 되어야 한다.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전략의 부모 또한 아이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아이를 회피하고, 아이와 싸우고 싶어하지 않는 부모들이다. 이 힘든 사춘기를 아이가 자기와 싸우고, 친구들과 싸우고, 부모와 싸워서 넘어가야 하는데, 부모가 쏙 빠진다면 아이는 불완전한 어른이 된다. 이들은 말을 들어주는 부모, 피하는 부모만 겪었기에 사회에 나와서 자신이 통제를 받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은 부모와 적당한 수준으로 싸우면서 때로는 지고, 때로는 이긴다. 어떤 말은 듣고, 어떤 말은 듣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책임을 배우고 성장한다. 이 과정 없이 성장하려면 그가 사회에 나갈 때 절대권력의 왕자여야 한다. 그런 현실은 없으므로 이런 부모의 대응도 실패한다.


세 번째 부모는 정말 대신 살아주고 싶어한다. 아이는 꽃이고 부모는 기꺼이 거름이 되어준다. 너무도 희생적인 부모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아이들은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이고, 세상에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아이가 되고 만다. 마이클 아이건(Michael Eigen)이라는 분석가가 말하는 ‘아이가 거의 종교가 되어버린 부모들’이다. 아이들에 대한 동일시가 너무 깊어서, 아이가 다치면 본인도 아프고, 아이가 힘들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세상에 맞서 싸우고 싶어한다. 부모의 삶은 아이의 기분에 달려있다. 병원에 올 때도 이 아이들은 부모가 주로 모셔오고, 의사를 만난 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옷 한 벌이 생긴다.



 

감정을 받아낸다는 건 성스러운 의무


불통의 시기 속에서 부모가 힘든 것 하나를 추가한다면 아이들이 세상을 겪으면서 토해내고 뱉어내는 온갖 나쁜 감정을 받아내는 일이다. 부모가 세상의 대표가 아니지만 아이들은 그런 불쾌하고 분노에 찬 감정을 가장 많이 투사하는 대상이 부모다. 받아내고 다시 비우고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받아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참 어렵다.  복수없이, 뒤끝없이, 화병에 걸리지 않고 아이들의 감정을 받기 위해서는 부모에게도 부모를 받아줄 사람이 필요하다. 흔히 배우자이고, 옆집 아줌마이고 형이거나 친정 언니이고, 때로는 전문가들이다. 아이들이 토했다고 그것을 다시 아이 목구멍으로 되돌려 넣겠다고 하면 난리가 나듯이, 사춘기 아이들의 심리적 토사에 대한 뒤처리가 부모의 의무이다. 그 성스러운 의무는 알고 보면 우리의 부모가 했던 일이다. 우리 부모가 받아주어 온전히 우리가 성장했듯이 우리도 한 세대의 성장을 위해 그렇게 다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부모를 해냈다고 후에 말할 수 있게 된다.





Writer 김현수 명지병원 병원문화혁신본부 본부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첫 근무지인 김천 소년 교도소에서 빈곤과 장애 청소년들의 현실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성장학교 별의 교장으로 역임하며 청소년, 지역사회, 중독, 트라우마, 정신분석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2015년부터 명지병원 병원문화혁신본부 본부장을 지내고 있으며 저서로는 <공부상처>, <중2병의 비밀>,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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