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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맛 기행]
여름 김치의 제왕

열무김치



열무는 사시사철 재배한다. 그래도 여름에 가장 많이 재배하는 이유는 이때가 제일 맛있고 계절과 어울리기 때문이다. 배추김치가 아무리 맛있어도 여름의 열무김치와는 비교 불가다. 여름에는 누가 뭐라 해도 열무김치다.




여름을 부르는 쌉싸름한 맛, 열무


농부들은 무 씨앗을 넉넉하게 밭에 뿌린다. 한 달 정도 지나 무로 키울 것은 그대로 놔두고, 일부 여린 무를 수확하는데 이를 ‘열무’라고 불렀다. 여린 무라는 의미지만 맛의 관점에서는 여름을 부르는 맛이기에 여름 무, 열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한여름의 열무김치는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려내는 보약 같기에 드는 생각이다. 지금은 아예 품종을 개량해 열무 씨앗을 따로 뿌리는데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마다 선호하는 맛이 달라 각기 다른 품종을 심는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열무는 쓴맛이 난다. 개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사실 열무는 쓴맛이 매력이다. 갓, 무, 배추에도 쓴맛이 있다. 정확히는 쓴맛이라기보다 쌉싸름한 맛이다. 채소도 씨앗을 남기기 위해 꽃을 피우는데, 꽃잎 모양이 십자가 모양인 것을 ‘십자화과 식물’이라고 한다. 배추, 무, 갓, 고추냉이 등 십자화과 식물에는 시니그린(Sinigrin) 성분이 들어있어 쌉싸름한 맛이 난다. 열무국수에 톡 쏘는 맛을 내기 위해 넣는 겨자도 갓의 씨앗을 갈아 만든 것이다.






여린 무라는 의미지만 맛의 관점에서는
여름을 부르는 맛이기에 여름 무,
열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5월이면 담가 먹기 시작하는 열무김치


날이 따뜻해지는 5월이면 김치를 담근다. 이때는 배추김치 대신 열무나 오이로 여름에 먹을 김치를 담근다. 열무김치 담그는 법은 간단하다. 열무를 절이고, 밀가루나 찹쌀로 풀을 쑨 다음 좋은 액젓과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넣고 비비기만 하면 끝이다. 여름에 열무나 오이로만 김치를 담그는 이유는 배추김치를 담그는 방식이 복잡한 것도 있지만, 날이 더워지면서 배추가 늦가을이나 초봄의 배추처럼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배추김치는 사시사철 먹지만 나름 김치도 재료 맛에 따라 제철이 있다. 무더운 여름에는 쌉싸름하고 아삭한 맛이 있는 채소가 제격인 것이다.


열무김치는 담가 바로 먹어도 되고, 며칠 두고 먹어도 된다. 처음 맛은 열무의 아삭한 식감과 쓴맛과 양념으로 먹는다. 쓴맛을 싫어하는 이들은 물에 담가 쓴맛을 제거하기도 하는데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다. 익을수록 처음의 쓴맛은 사그라지고 여린 단맛과 신맛이 들기 때문이다. 억셌던 식감도 부드럽게 변한다.





안 익으면 안 익은 대로, 익으면 익은 대로


안 익은 열무김치는 밥과 잘 어울린다. 특히 보리밥하고는 궁합을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천생연분이다. 아삭한 식감과 쌉싸름한 맛은 통통 튈 것 같은 보리밥과 비벼야 제맛을 낸다. 보리밥과 비빌 때는 열무김치에 얼갈이가 들어간 것이어야 한다.


푹 익은 열무김치는 국수와 찰떡궁합이다. 열무국수의 고명으로 올리는 열무김치는 잘 익은 것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열무김치에서 살짝 신맛이 나야 시원한 국수 육수와 어울린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입안은 텁텁해진다. 본능적으로 시원하고 상큼한 것을 찾는다. 한여름 평양냉면을 먹을 때 식초 몇 방울을 넣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 익어 상큼함이 터지는 열무김치로 만든 국수는 몇 방울의 식초도 필요 없다. 푸른색 바탕에 살짝 노란빛이 도는 열무김치와 쫄깃한 식감을 가진 하얀색 면발을 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먹는다. 글을 쓰면서 상상하니 침이 고인다. 한여름의 열무김치는 익어감에 따라 다른 맛으로 입맛을 자극한다. 마치 더위에 지친 입맛을 살려내는 보약과도 같다.




 TIP 열무김치를 살 때 알아두면 좋은 팁  


필자도 바빠서 열무김치를 못 담글 때는 잘 포장된 제품을 사다 먹는다. 단, 열무김치를 살 때는 필요에 따라 봉투를 잘 살펴본다. 열무 보리밥이 먹고 싶으면 포장이 부풀지 않은 것을 고른다. 막 담근 것은 아니더라도 설익은 김치다. 김치 포장지 안에 붙어 있는 하얀 봉투는 흡수제인데, 김치가 발효하면서 발생하는 가스를 일부 흡수한다. 하지만 가스 흡수제가 있어도 시간이 다소 지나면 포장이 부풀어 오른다. 그래서 열무국수가 먹고 싶을 때는 일부러 가스가 빵빵하게 찬 것을 고른다.





Writer 김진영

25년간 식품 MD로 활동하면서 식재료 산지를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빈 전문가. 여행과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접목해 바른 식재료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행자의 식탁’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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