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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맛 기행]
아삭아삭 씹히는 무의 참맛!

총각김치


만물에 맛이 드는 가을이다. 가을에 전어가 맛있는 것이 아니다.

전어조차 맛있어지는 때가 가을이다. 총각김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총각무의 고장, 서산과 태안 


몇 해 전 안면도로 출장을 갔다. 길다란 해안가를 가진 안면도는 곳곳에 아름드리 소나무와 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하지만 미식가들에게 안면도는 유기농 태양초와 호박고구마가 맛난 곳이다. 태양초 고춧가루를 보러 안면도에 간 김에 우럭젓국을 점심으로 먹었다. 쌀뜨물에 잘 말린 우럭을 청양고추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소금이 아닌 새우젓으로 간하기에 젓국이다. 건조한 생선에서 우러나는 감칠맛과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태안과 서산 일대에서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런데 우럭젓국 먹으러 가서 정작 입맛을 사로 잡은 건 총각김치였다. 잘 익은 총각김치는 시원한 젓국 국물과 참으로 잘 어울렸다. 아삭함은 인심 좋은 상인에게서 듬뿍 받은 덤처럼 기분 좋은 식감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서산과 태안 그리고 경기도 화성이 총각무의 대표 산지였다. 총각무를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재배하는 곳이다 보니 총각무도 맛있거니와 향기 좋은 태양초까지 아낌없이 사용해서 담갔다. 거기다 재래종 육쪽마늘의 원산지가 이 동네다. 총각김치가 맛없으면 솜씨가 진짜로 없는 사람이다.



 


총각무? 알타리무? 여름철 초롱무도 있다 


총각무? 알타리무? 국립국어원에서는 총각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둘 다 사용하고 있거니와 정부 자료에서도 알타리무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 총각무나 알타리무에 대한 어원은 몇 가지가 있지만 설은 설일 뿐이다. 총각무는 ‘무가 작은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이렇게 자라는 무다. 열무는 어린 무가 맞지만 말이다. 총각무는 작은 종의 무로 큰 무와 마찬가지로 봄·가을에 재배하는 것이 가장 맛있다. 무, 배추, 갓 등 꽃이 십자모양으로 피는 채소들은 찬바람이 불 때가 가장 맛있다. 가을과 겨울 사이, 겨울과 봄 사이에 나는 것들이 달고 아삭하다. 뜨거운 여름에도 총각무를 찾기에 생산은 하지만 오롯이 총각무는 아니다. 작은 무의 일종인 초롱무가 대부분이다. 초롱무는 끝이 둥그런 총각무하고는 다른 모양새다.

 


뜨거운 여름을 지난 무의 매운맛


여름에 나는 초롱무는 총각무와 모양새도 다르지만 맛도 다르다. 봄·가을에 나오는 총각무보다 맵다. 총각무 성분 중에는 티오글루코사이드(Thioglucoside)가 있다. 무를 씹거나 칼로 써는 등의 물리적 힘을 주면 미로시네이즈(Mirosinase)가 티오글루코사이드를 분해해 매운맛을 내는 알릴이소티오시아네이트(Allyl isothiocyanate)를 만든다. 봄·가을에 잘 자라는 총각무가 뜨거운 지열에 노출되는 한여름에는 매운맛 성분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무에서 매운맛이 많이 난다. 이는 총각김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무로 만드는 모든 음식에 해당된다. 깍두기든, 순무김치든 말이다. 


매운맛이 많아도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총각무를 양념과 버무려 숙성하는 사이 매운맛이 시나브로 사라진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의하면 김치를 담그고 하루가 지나면 27% 정도, 3일이 지나면 매운맛의 70%가 사라진다고 한다. 숙성 과정에서 생성되는 유기산이 미로시네이즈의 활성을 중단시키면서 매운맛을 내는 유황화합물을 분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무의 맵고 아린 맛을 제거하기 위해 무를 절일 때 식초 몇 방울 넣어 효소를 불활성화시켜서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매운맛이 싫다면 익기를 기다리거나, 식초에 담그면 된다.  



 


총각김치는 익을수록 맛이 다양해진다 


배추는 겉절이로 먹기도 하지만, 익지 않은 총각김치는 양념과 무가 따로 놀기에 맛이 없다. 얼추 총각김치가 익기 시작하면 밥과 참 잘 어울린다. 익으면 익을수록 어울림은 더욱더 돈독해진다. 총각무가 맛있어지는 가을에는 고구마가 한창 나오는 시기다. 군고구마를 먹을 때 총각김치를 더하면 고구마의 단맛이 몇 배는 도드라진다. 이때의 고구마는 말랑말랑한 호박고구마보다는 포슬포슬한 밤고구마가 훨씬 어울린다. 호박고구마의 식감은 한없이 부드럽다. 입안에 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넘어간다. 밤고구마는 침이 있어야 잘 넘어간다. 시원한 총각김치를 왼손에, 밤고구마를 오른손에 들고 먹어야 제대로 맛이 난다. 총각김치의 시큼한 향에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인다. 고구마가 슬렁슬렁 잘 넘어갈 수밖에 없다.


모든 김치는 공기와 접촉이 많을수록 빨리 쉰다. 쉰 총각김치는 라면하고도, 김치찌개하고도 잘 어울린다. 무의 아삭함이 살짝 죽을 정도로 끓인 다음 면과 스프를 넣고 마저 끓이면 총각김치 라면이 된다. 총각김치를 곁들여 라면을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다. 김치의 신맛이 라면의 기름맛을 지배하기에 특별하고 상큼한 라면을 즐길 수 있다. 김치찌개는 배추김치로 끓이는 것보다 끓이는 시간을 좀 더 오래 하면 된다. 아니면 무를 잘게 썰고 볶음밥을 해도 맛있다. 깍두기 볶음밥을 생각하면 된다. 깍두기에 없는 이파리가 있어 더 씹는 맛이 좋다.





Writer 김진영 푸드 칼럼니스트

25년간 식품 MD로 활동하면서 식재료 산지를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빈 전문가. 여행과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접목해 바른 식재료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행자의 식탁’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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