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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터뷰]
개인과 공동체의 아픔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소설의 힘

젊은 작가 김금희 인터뷰

 


그렇게 해서 함께 걷기 시작한 그 애와 내가 그날의 해변 길에 있다. 한번 불어오면 나를 통과하며 저절 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써서 내가 찢고 나가 야 하는 듯 느껴지는 거센 바닷바람 속에, 해야 하는 인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며 앞장 서 가는 그 애의 뒷모습 속에, 방파제의 갯강구들을 밧줄로 괜히 훑어 바다로 빠뜨리며 걷는 그 애의 전 진 속에, 그해 그 섬에서의 시작이 있었다.

- 장편소설 <복자에게> 중에서



인생 자체가 넘어졌다는 깨달음의 순간


‘단정하고 섬세한 문장과 예리한 시선으로 개성 있는 서사를 만들어내는 김금희는 오늘 한국소설의 젊은 성좌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별들 중 하나(문학평론가 염무웅)’라는 상찬이 넘치지 않는 작가이다.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 당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복자에게〉 등을 펴냈으며 김승옥 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 신동엽문학상, 현대문학 상 등을 수상한 그는 이 시대, 한국소설의 가장 뜨거운 현재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역시 김금희”라는 끄덕거림을 불러오는 터라 타고난 작가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지 만, 놀랍게도 김금희는 서른 살까지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았다. 어려서 작가를 꿈꾸긴 했으나 마음 한쪽 에 고이 담아두고 지내던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출근길에 나섰다가 맞닥뜨린 작은 사고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출근 버스를 타려고 전력 질주를 하다가 넘어져 한 쪽 팔이 거의 다 쓸리는 일이 있었어요.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데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버스에 타긴 했는데, 만원 버스 계단참에 서서 가는 내내 제 인생 자체가 넘어진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작가라는 꿈을 이렇게 유예시켜도 되나 생각했고, 고민하다 결국 사표를 내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면서

유순해진

밤의

공기가..."


 



마음을 흔드는 일상의 풍경 하나


그렇게 작가가 되었지만, 소설가 김금희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독자와 만나지 못했다. 투고한 소설을 계속 거절당하며 불안과 우울의 시기를 거쳤다. 심리상담을 받기도 하면서 극복하려 애썼는데,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고통받는 인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고통 속에서 끄집어내려 노력하면서, 그 또한 스스로를 치유하고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작가의 삶은 어딘가 다르고 유별난 구석이 있을 것 같지만, 김금희의 삶은 소설가가 되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성실한 직장인이 지각 결근 없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출퇴근을 반복하듯, 아침에 동네 카페로 출근해 글을 쓰고 여가 시간에는 식물을 돌보거나 산책을 한다. 소설 쓸 때는 카페라테 한 잔이 필요하고, 만두를 ‘소울 푸드’로 손꼽는 것 또한 소박하고 평범한 모습이다. 그래서일까? 김금희 소설 속 사람들은 평범한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우리 이웃의 모습이기도 하다. 격한 감정의 파도와 특별한 극적 사건 없이 계속되는, 조금은 무료하고 때때로 지리멸렬한 그 평범한 나날을 우리는 일상이라고 부른다. 김금희의 소설은 모두 그 일상에서 나고 자란다. 


“제가 가장 영감을 많이 얻는 소재는 곧 ‘일상’입니다. 일상의 우연한 풍경들이 제 마음을 흔들 때가 많아요. 저에게 소설은, 김금희라는 사람의 인생 자체이자 사람들에게 띄워 보낼 수 있는 간절한 바람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균형 감각이에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정서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라고, 독자가 그 정서를 느끼기를 진심으로 바라거든요.”


출입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고 돈 내고 나가라던 사장만 자기가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돈 내고 나가라,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면 자신을 끌어안은 거대한 분노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경애는 도저히 그런 것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잠갔다,는 것과 돈 내고 가라,고 살기 위해 뛰쳐나가던 아이들을 막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열일곱 이후로는.

-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중에서


 


고통받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고픈 마음


작가들에게도 첫 작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그 역시 첫 장편소설인 〈경애의 마음〉을 많이 아낀다. 첫 장편이라 무척 힘들기도 했고, 그가 평생을 보낸 인천을 배경으로 마음을 다해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들이 겪은 아픔과 슬픔을 오롯이 녹여냈다. 글이 잘 써지는 날도, 한 자도 살리지 못하고 다 지워 버린 날도 변함없이 하루 7시간,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그는 스스로를 노동하는 사람, 글쓰기 숙련공으로 여긴다. 그 평범한 일상이 어느 순간 속절없이 바스라질 수 있음을 알기에, 김금희는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려는 사람들을 결코 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에 해고당한 노동자, 고통받는 여성, 사회적 재난을 당한 시민, 주류에서 비껴서 있는 소수자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김금희에게는 변치 않는 신념이 하나 있다. ‘엄마는 세상을 핸들링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오랜 믿음이 바로 그것. 소설 속 모든 엄마들, 그리고 그 엄마의 자식들이 꼿꼿이 허리를 펴고 세상과 마주하고 더 이상 마음 다 치지 않기를 바라며 김금희는 오늘도 묵묵히, 마땅히 써야 할 이야기를 쓴다. 

“그들을 쓰는 이유는 제 자신이 노동하는 여성이며 공동체에 닥친 어려운 재난과 사회문제들을 함께 겪고 같이 아파하는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생각하고 고민해 볼 지점들, 마음들을 소설로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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