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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트렌드]
그 많던 잔치는 어디로 갔을까?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들에 대한 단상


잔치는 으레 겨울이다. 정신없이 새해를 맞는 설과 대보름 그리고 집집마다 화려한 꽃다발 졸업식으로 이어지던 일련의 겨울 잔치들. 그 많던 잔치는 어디로 갔을까?



모이면 늘 잔칫집 같았던 어린 시절 

바닷가 마을 마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잔치는 경남 함안 큰아버지 댁의 설이다. 한 남자를 만나 그 집안의 일원이 되기 전까지 내 가족의 중심은 당연히 큰아버지 댁이었고, 큰아버지 댁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잔치를 기준으로 해가 가고 달이 기울었다. 

4남매의 맏이였던 큰아버지는 유복자로 태어난 막냇동생을 위해 선친의 자릴 대신하고 부모를 자처했다. 설날이면 집에서 키우던 장닭을 서너 마리 거뜬하게 털을 뽑아 닭 육수를 끓이고 닭고기를 간해 고명으로 얹는 닭장 떡국을 끓였다. 닭을 어찌나 고았는지 진득해진 국물을 퍼 나르기 바빴던 십대의 나. 

뜨거운 국물에 더 뜨거운 입김을 후후 불어대며 국물을 식히던 일가친지들을 내려다보며 큰 어머니와 딸들에게 “여 좀 더 갖고 온나~” 호방하게 떠들던 큰아버지의 달뜬 목소리는 당신의 일가가 이토록이 나 건재하단 걸 보여주고픈 큰아버지 나름의 자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십칠 년 전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새신랑과 새댁에게 큰아버지는 고이 키운 집돼지를 잡아 거하게 잔치를 치러주시곤 몇 년 후 소천하고 말았다. 그 후 우리 일족의 잔치는 갈 곳을 잃고 소그룹 행사로 빠르게 바뀌었다.



일련의 대소사를 기념하는 가족 모임 

생각해 보면 비단 우리 가족뿐일까.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 속에서 가족들의 잔치는 그리고 소소한 가족 모임은 변해갔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도 어지간하면 직계 가족만 단출하게 모이는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중학교 졸업식은 중국집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은 돼지갈빗집에서, 대학 졸업식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삼사 년 단위로 외식 트렌드도 바뀌는 지금, 오랜 불경 기로 패밀리 레스토랑이 이십 년 만에 다시 각광받는다는 게 재밌고도 재밌다.

특히 코로나19를 기점으로 행사나 모임은 많이 달라졌다.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없던 온라인 집들이, 두 눈을 맞추는 그 평범한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던 랜선 파티, 3인, 6인으로 등으로 규정되던 모임의 한계 인원에서 해방되고도 예전 같은 대규모 인원의 행사는 자연스레 지양하게 되었다. 



 


팬데믹이 불러온 가족 모임의 변화들

따지고 보자면 팬데믹은 한국 식문화사에 변곡점이 됐대도 과언이 아니다. 잠들어 있던 요리 DNA를 일깨우며 집집마다 색깔 있는 요리사를 육성했다.

행사를 주관하는 호스트가 삼색나물을 위시한 잡채며 불고기 등 음식 일체를 준비하는 건 준비하는 입장과 찾아가는 손님 둘 다 부담스러웠다.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짓거리를 보면서 설거지를 도울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안 모이는 게 서로 편하지 하는 자조 섞인 푸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호스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호스트의 일방적인 메뉴 선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참석자들이 한두 개의 주요리와 각자의 취향 저격 술도 챙겨오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의 유행은 쉽게 사 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어느 누구도 부담스럽지 않은 이런 홈파티의 변화와 진화는 너무도 반갑다. 초밥이나 깐풍기와 딤섬 같은 전통적인 일식, 중식은 물론, 팟타이와 똠얌꿍 같은 태국 음식, 베트남의 분짜 등 세계의 식탁이 금세 차려진다. 치킨과 피자 그리고 파스타는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요리다.



잔치는 그렇게 사라지지 않았다 

골목 모퉁이 선술집에서든, 화려한 하이엔드 맛집에서든, 불콰한 얼굴로 소주잔 기울이는 삼겹살가게에서든,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든, 그리고 당신과 나의 작은 홈에서도 파티는 계속된다. 

소소하게 눈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고 새해 다짐을 하며 일 년을 설계하면서 가족 친지 벗들의 무사와 안녕을 빈다. 결국 그 많던 잔치들은 결국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누구 말마따나 잔치는 계속된다. 작아지고 잦아지고, 섬세하게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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