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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조용하고 따뜻하게, 정이 담긴 한 그릇

영화 <파묘> 속 국수

 


‘미운 놈’에게까지 ‘떡 하나 더 주는’ 한국에서는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이 정 있는 따뜻한 행위로 여겨진다. 그래서 <동백꽃>에서 감자는 점순이의 마음 표현 수단이 됐고,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에서 고길동 형에게 고구마를 얻어먹은 둘리 일당은 어린 고길동을 때려주려던 계획을 취소한다. 전체적으로 스산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이 드는 오컬트 영화 <파묘>에서도 산에서 캔 송이를 나누어 먹으며 막걸리를 곁들이거나, 날도 으슬으슬하니 국밥 한 그릇 하고 오라 권하는 장면에서만큼은 따뜻함이 묻어난다. 보국사 절에서 스님이 국수를 삶아 더덕주와 함께 대접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미심쩍은 상황, 

일행 앞에 놓인 국수 한 그릇

영화 중반부, 4장이 시작되면서 풍수사 상덕은 동티가 난 일꾼의 부탁을 받아 파묘했던 묘소를 다시 찾는다. 그리고 첩장된 거대한 관을 발견해 장의사 영근, 무속인 화림과 봉길을 다시 부른다. 상주에게 관의 처치를 논의하기 위해 일행은 일단 관을 묘소 근처 보국사로 가져간다. 보국사를 지키는 스님은 사람의 것이라 믿을 수 없는 거대한 관의 크기에 놀라기는 하지만, 이미 어두워진 쌀쌀한 날 정체불명의 관을 들고 하루 신세 질 것을 청하는 이들을 내치지 않는다. 오히려 관을 둘 창고 자리를 내주고 몸을 녹이라며 국수를 삶아 대접한다. 일행은 따뜻한 국수를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고 더덕주까지 마시며 찝찝하고 불안한 상황은 잠시 잊고 즐거워한다. 



 



국수 한 그릇에 몸을 녹이고 마음을 녹이고 

이날 밤부터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관객들은 보국사라는 절과 스님의 정체를 넘어 그가 대접한 국수조차 의심하게 된다. 감독의 의도에 따라 관객에게 긴장을 주는 맥거핀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낸 셈이다. 

하지만 국수라는 음식이 담고 있는 의미를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사찰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 즉 스님을 웃게 만드는 음식이라고 부른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국수가 왕과 귀족, 승려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기도 했다. 이를 떠올리면 국수를 대접한다는 행위에 나쁜 뜻을 연결시키기 어렵다. 국수는, 비록 수상쩍은 것을 들고 갑자기 찾아온 손님들이지만 잠시나마 긴장을 풀고 웃음을 찾을 수 있도록 스님이 내준 따뜻한 마음이었다. 

또한 사찰 국수는 버섯, 다시마, 간장 등 살생이 필요하지 않은 재료로만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오니가 살아있는 은어를 게걸스럽게 탐하던 모습과 상반되는 이미지도 찾을 수 있다. 앞뒤로 이어진 장면들 때문에 관객들로 하여금 보국사와 스님의 정체에 대해 의심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오니와 같은 편이 아님을 암시하는 요소는 분명 있었다. 



 



 



‘먹을 것’으로 핏줄과 정신을 지키다

영화 초반부, 친일파 가족의 의뢰를 받고 미국 LA까지 날아간 화림과 봉길은 아기의 상태를 확인한 뒤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알아서 목을 축인다. 반면 보국사 스님은 돌아오는 것이 없음에도 국수를 삶고 더덕주를 내왔다. 다시 한번, 한국인의 정은 먹을 것으로 통한다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장면 대비다.


“혼(魂)은 불완전하고, 귀(鬼)는 육신이 없어서, 그래서 결국, 온전한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절대 이길 수 없단 말이에요.”

- 봉길의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화림의 대사


극 중 화림은 정신과 육체를 갖춘 인간을 귀신이 이길 수 없다는 게 무속의 정설이라고 했다. 우리의 정신과 육체는 온전한 기능과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먹을 것으로부터 얻는다. 결국 한국인의 ‘먹을 것 나눔’은 따뜻한 정뿐만 아니라 귀신도 이길 힘까지 전하는 행위가 된다. 영화에 담긴 민족주의적 의미와 연결시키면, 낯선 이에게도 뜨끈한 국수 한 그릇 말아주던 정이 역사적으로 계속 이어지던 외부 위협으로부터 우리 핏줄과 정신을 지키는 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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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2024)

개요 미스터리, 공포 / 134분

감독/각본 장재현 

출연진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검은 사제들>, <사바하>로 유명한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 미국 LA의 한 가족으로부터 기이한 묘의 이장을 의뢰받은 무속인과 풍수사, 장의사의 스토리를 담았다. 오컬트 소재와 풍수지리, 우리나라 역사를 잘 연결시킨 스토리 덕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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