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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도시락의 온기, 권력의 냉기

드라마 <더 에이트 쇼> 속 도시락


어린 시절 소풍날이 기다려졌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시락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도시락 메뉴가 흔히 사 먹을 수 있는 김밥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누구나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도시락통을 열 때마다 설렘이 느껴졌을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연인이 서로에게 도시락을 싸주고 그것을 먹는 일 역시 사랑과 정성을 전하는 일이 된다. 하지만 도시락이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될 때, 여기에 담긴 따뜻한 의미는 사라진다. 드라마 <더 에이트 쇼>에서는 이를 넘어 권력관계를 만들고 폭력적인 상황까지 초래한 시발점이 됐다.


따뜻한 마음이 들어가야 진짜 도시락

도시락을 싼다는 것은 단순히 통에 음식을 옮겨 담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먹는 이의 취향과 식사량, 요리 직후 바로 먹는 것이 아님을 고려하여 메뉴와 레시피를 구상해야 한다. 이를 먹을 장소와 시간, 날씨까지 생각해야 함은 물론 각 메뉴가 섞여버리지 않도록 통에 잘 담을 방법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렇듯 도시락 싸기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직접 싼 도시락을 받으면 메뉴나 맛과 상관없이 적잖이 감동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는 도시락은 그저 밥과 반찬 여러 개가 한 통에 담겨 있는 것에 불과하다.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 편의점 도시락을 떠올려보자. 분명 메뉴명은 다른데 전부 비슷한 맛에 쉽게 질리게 되고, 물리적인 의미를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도시락의 감동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도시락통의 각 칸마다 담긴 사랑과 정, 우정, 배려 때문임을 알게 되는 대목이다.


 

도시락을 싼다는 것은

단순히 통에 음식을 옮겨 담기만 하는 일이 아니다.

먹는 이의 취향과 식사량, 

요리 직후 바로 먹는 것이 아님을 고려하여

메뉴와 레시피를 구상해야 한다. 



무기가 되어버린 도시락


“8층에서부터 7층 그리고 6층, 5층, 4, 3, 2, 1층으로 내려온다는 건 모두가 서로의 갑과 을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뜻한다. 특히 아래층은 더 불리해진다.”

- 1화 ‘3층’의 내레이션


드라마 <더 에이트 쇼>에서 쇼가 끝날 때까지 참가자들은 오로지 주최 측이 제공하는 도시락과 생수로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메뉴가 다양하고 나름 맛도 있는 것 같지만, 여기서 ‘주최 측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한술 더 떠, 도시락은 참가자 8명이 똑같이 나누거나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없게 12개씩만 제공된다. 그것도 가장 위층인 ‘8층’에게 전량을 제공해 도시락 배분을 통제할 수 있게 함으로써 권력 구조를 만든다. 실제로 3화에서 ‘8층’은 공동의 합의를 이행하기 싫다는 이유로 도시락을 독점해버린다. ‘8층’의 결정에 따라 굶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된 참가자들은 ‘8층’의 눈치를 보게 되고, ‘8층’은 이들 위에 군림한다. ‘8층’과 그의 시녀를 자처한 이들은 점점 자신의 잔인함, 폭력성, 비도덕성을 숨기지 않게 되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온다.


 


 




한 숟갈씩의 온기로 도시락통을 채우면

도시락을 비롯해 편중된 자원을 볼모로 진행되는 쇼는 식량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밥과 물’이 전쟁과 침략, 외교적 분쟁의 이유가 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든지 많다. 물론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 식량 전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에이트 쇼>가 현실 세계를 반영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편중된 권력과 결여된 인간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비극이 아직 많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서로를 위해 도시락을 싸는 세계를 상상한다. 가난해서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한 친구에게 반 친구들이 밥 한 숟갈, 반찬 한 젓가락씩을 당연하다는 듯 나누었던 마음으로. 화려하거나 비싼 메뉴는 아니어도 좋다. 배는 조금 덜 불러도, 모두가 결핍 없이 충만해질 것이다.




◆◆◆

 

더 에이트 쇼(2024) 

개요 스릴러 / 8부작

감독 한재림 

출연진 류준열 천우희 박정민


웹툰 <머니게임>,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공간에 각각 배정되어 시간이 쌓일수록 상금이 적립되는 게임에 참여하며 벌어지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이야기를 그렸다. 공개 2주 만에 넷플릭스 비영어권 드라마 순위 1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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