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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교육]
먹겠다는 의지가 가져온 변화,

냄비


먹겠다고 맘 먹으면 뭔들 못할까. 커피, 카카오, 고추, 후추, 아보카도, 고사리, 복어… 다른 동물들은 먹지 못하는 식재료들이지만, 우리 인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어 먹었고, 먹고 있다. 더 안전하고 맛있게 먹고자 한 의지가 다양한 주방 도구를 발전시켰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냄비는 인류의 삶까지 바꿨다.



인류 최초의 조리도구, 냄비

인류는 언제부터 식재료를 요리해 먹었을까? 170만 년 전, 인류는 화산, 산불, 낙뢰 등 자연현상을 통해 처음 불이라는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여기에 그을리고 탄 뿌리식물이나 고기를 우연히 맛보면서 처음으로 식재료를 익혔을 때 더 맛이 좋고 소화도 잘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끓이는 행위는 우연히 발견하기 어렵다. 자연 상태에서 끓는 물을 발견하기도 힘들거니와 음식을 끓여 익히려면 이것을 담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용기가 물, 불에 모두 잘 견뎌야 함은 물론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수렵 및 채집으로 먹을 것을 얻었던 구석기인들은 구태여 끓여 먹기 위한 그릇을 만들지 않았다. 이동 중 깨지거나 손상되기 쉬운 도구를 구태여 열심히 만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 구석기 유적에서 불에 탄 흔적이 없이 쪄서 익힌 동물의 뼈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끓이거나 삶아 먹는 조리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아마 동물의 가죽과 위, 껍질 등을 사용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은 화덕을 만드는 과정에서 진흙으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불에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토기를 비롯한 그릇들, 즉 원시적인 형태의 냄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빙하기가 끝나고 식량자원이 폭 넓어진 이후부터다. 정착 생활이 가능해지니, ‘잘 먹기 위한’ 수고로움도 받아들여졌다.



 



냄비, 인류의 번영을 이끌다

야채와 열매는 쉽게 타 구이에 적합하지 않다. 물에 넣고 끓였을 때 섬유질이 풀어져 소화가 쉬워진다. 일부 식재료의 경우 삶거나 데치지 않으면 먹기에 안전하지 않기도 하다. 고기 역시 마찬가지로, 물에 넣고 끓이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근육 섬유는 물론 뼈에서도 진국을 우려낼 수 있게 된다. 모든 식재 료의 영양소가 국물 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합되기도 한다. 이에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폴란은 냄비를 ‘제2의 위장’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냄비 속에서 부드러워지고 살균까지 된 음식은 치아가 없는 두 연령층, 아기와 노인들도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게 도왔다. 평균수명이 30세 언저리였던 시절이니, 냄비 요리가 가지고 온 혜택은 대부분 아기들이 보았을 것이다. 이는 인류 번성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아기들이 모유 대신 부드러운 음식을 이유식으로 먹게 되면서 수유 기간이 짧아지자, 신석기 여성들이 아이를 더 낳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구석기 말엽 500만 명에 불과하던 인구가 서력기원 무렵 4억으로 불어난 데엔 냄비도 한몫했다. 

냄비 속에서 섞이는 것은 영양소뿐만 아니라 각 식재료의 맛이기도 하다. 국물 안에서 어우러진 채수와 육즙은 인류에게 혀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처음 알려줬을지도 모른다. 또한 냄비는 물에 넣고 삶는 것 외에 튀기고, 볶는 조리법 역시 가능케 한다. 그만큼 인류의 식문화는 더욱 다채롭게 발전할 수 있었다. 사학자 펠리페 페르난데스 아르메스토가 냄비의 발명을 전자레인지가 나오기까지 인류가 이룩한 마지막 혁신이라 보았던 이유다.



 


변화하는 냄비, 그 미래는?

흙으로 빚은 원시적인 형태의 냄비는 새로운 재료의 발견과 기술의 발전, 지역별로 특색을 띠게 된 식문화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해 왔다. 전통적으로 많이 쓰였던 재료는 철과 구리다. 열전도율과 비열이 우수하고 가공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에 대한 우려가 있어, 대량생산이 가능한 시대가 오자 열 특성이 좋고 가벼운 알루미늄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냄비도 대거 등장했다. 이 외에도 무쇠, 유리, 법랑, 세라믹, 테플론 등 다양한 소재가 냄비의 몸체나 코팅 용도 로 사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실리콘이나 종이 냄비도 나오고 있다. 가열기구가 더욱 다양해지고 신소재도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는 요즘. 냄비의 변화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참고 책 <역사와 문화로 보는 주방 오디세이>, 장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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