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초연결사회
2024년도 연말까지도 글로벌 OTT 넷플릭스의 모 요리 대결 프로그램의 인기는 거세다. 공개 직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 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를 만치 해외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해당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셰프의 식당은 온라인 예약이 열리자마자 2만 명이 접속해 1분 만에 매진됐고, 우승자의 식당 예약엔 무려 11만 명이 넘게 몰리면서 예약 애플리케이션이 일시적으로 마비됐다. 국내 한 포털에서는 해당 프로그램 출연 셰프 식당 지도 서비스까지 나섰다.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를 넘어 글로벌 화제가 됐다.
장안의 화제에서 세계의 화제로
장안(長安)의 화제(話題)라 하니, 장안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중국 한나라, 당나라의 수도였던 고대 도시 장안(현 산시성 시안시)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아랍 상인들과 신라인 등 외국인들이 안방처럼 드나들 정도로 국제적 교역이 활발한 글로벌 메가시티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던 시절인 만큼, 입에서 입으로 통하던 장안의 화제는 곧 학문과 문화에 있어 가장 트렌디한 이슈이자 화두였다. 그리고 장안의 유행 하나가 길게는 수백 년 동안 한중일 동북아시아를 고고히 관통하던 시절이었다.
시대가 변해 전 세계 수십억 명이 동시에 보고 듣는 것이 가능해졌다. 먹고 입고 즐기는 모든 것을 한 순간에 공유하게 된 ‘초연결사회’에서 ‘지역’이나 ‘국경’이 대체 무슨 장애나 문턱이 될까? 미식계의 현자로 떠오른 최강록 셰프, 진정한 리더십을 보여주며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한 최현석 셰프, 광주 안유성 명장 등 화제가 된 요리 대결 넷플릭스 시리즈에 출연한 참가자들의 식당들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특정 인기 점포, 이른바 ‘시그너처 스토어’가 되어 인근 상권을 살리고 지역 경제까지 들썩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는다. 팬들은 주저하지 않고 준우승자 에드워드 리의 미국 켄터키 주 식당 정보를 교환하고 과감하게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세상에 맙소사!’
초연결사회, 세계를 식탁 삼다
비단 식당만의 일이 아니고 소비 역시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유행의 시간 차 없이 그 무엇이든 동시간대에 적극적으로 향유한다. 중국의 길거리 음식 ‘탕후루’에 이어 중동 디저트 ‘두바이 초콜릿’, 홍콩 화채 ‘망고 사고’, ‘스웨덴 캔디’, 이란 간식 ‘라바삭’ 등 간식 시장과 디저트 시장은 시간적·공간적 제약 없이 글로벌 해진 지 오래다.
덕분에 예전 같았으면 부정적인 이미지였던 ‘카피캣’ 상품에 대한 인식도 확 달라졌다. SNS상에서 토마토주스와 맥주를 혼합한 해장술로 이름을 날린 일본 아사히 맥주 '레드아이'의 카피캣 제품이 국내서 나오자마자 팬들은 환호작약했다. 굳이 일본까지 가지 않더라도 일본의 유행을 실시간으로 향유하게 된 데 감사를 표했다.
예전처럼 ‘짝퉁’이니 ‘짜가’니 비하하는 게 아니고, 여러 카피 브랜드를 두고 비교 체험하면서 먹는 것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것을 보면 카피캣의 위상은 확실히 업그레이드됐다. 생각해보면 스피디한 기획력으로 당당히 유행에 합류하는 발 빠른 모방 제품들 덕분에 우리는 드넓은 지구촌을 식탁 삼는지도 모른다. ‘땡큐!’
한류라는 거대한 리퀴드가 흐르고 있으니
우린 보다 적극적으로 먹고 마시고 즐길
의무와 권리가 있다.
21세기 초연결사회에서 장안의 화제는 단순히 하나의 동네나 지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안의 화제는 들불처럼 삽시간에 전 세계로 타오르고 거대한 물처럼 유동적으로 흐른다. 이처럼 현대 도시와 사람들이 유연하게 섞이고 교류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낳는 유연한 변화를 ‘리퀴드폴리탄(liquidpolitan)’이라 한다지?
넓게 보자면 초연결사회라는 배후를 등에 업은 지금, 세계의 모든 눈과 귀가 한국에 쏠려 한국 문화를 즐기고 있다. 나는 이 모든 한류(韓流/Korean Wave)를 리퀴드폴리탄의 정점이라고 본다. 작게는 시장을 굳건하게 지킨 오랜 노포, 새로운 골목 상권을 탄생시킨 시그너처 스토어도 마찬가지다. 예전이라면 ‘로컬’에 불과한 아이템이 ‘지역’이라는 문턱을 사뿐히 넘어 전국구 - 혹은 세계화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욱 끈끈하고 더욱 단단한 연결을 위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한류라는 거대한 리퀴드가 흐르고 있으니 우린 보다 적극적으로 먹고 마시고 즐길 의무와 권리가 있다. 하나의 넷플릭스 시리즈를 넘어, 세계가 더욱 K-푸드와 K-콘텐츠라는 파도를 즐기기를 바란다.
때마침 이 글을 쓰는 오늘,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세계 문학계와 문단이 들썩이며 국내 서점가도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살다보니 내 모국어로 쓴 글이 노벨문학상이 되는 날이 다 오는구나, 눈물이 날 만큼 기쁘다. 한강, 이름처럼 커다란 물줄기. 오늘만큼은 한강 작가와 깊은 연대와 유대를 나누며 가을밤을 다독이고 싶다. 아마 세계가 나와 같은 마음이리라. 이렇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연결은 더욱 끈끈해지고 더욱 단단해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