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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터뷰]
빵으로 만드는 달곰한 인생

서병주 파티시에

 


2015년이었다. 훈훈하게 생긴 남자 셰프들이 앞치마를 둘러매고 브라운관을 채웠다. 요리 실력을 한껏 뽐내며 시청자들의 시각과 미각을 자극했다. 한 파티시에는 <올리브쇼>에서 기린 무늬를 똑 닮은 ‘기린롤’부터 타르트, 마들렌 등 시리도록 달콤한 디저트를 선보이며 뭇 여성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베어스덴’을 운영하는 서병주 파티시에다. 그런데 지금, 서병주 파티시에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그저 빵이 좋았던 코흘리개가 꿈을 가지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어릴 때부터 그저 빵이 좋았다.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용돈만 받으면 곧장 빵집으로 가 코 묻은 돈을 내밀었다. 그렇게 유년기를 보냈다. 중학교에 들어갔어도 빵은 여전히 좋았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 먹을수록 아쉬움이 남았다. 중학생의 입맛이 뭐 그리 대단했겠느냐마는 코 묻은 돈으로 사 먹던 때의 그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맛을 느끼고 싶었고, 직접 내고 싶었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제과·제빵의 길을 가겠노라 마음먹었다.


지금이야 요리하는 사람이 주목 받지만 그땐 아니었다. 더군다나 남자라면 더 그랬다. 군대를 전역하고 프랑스로의 유학을 계획했다. 그런데 꼭 이런 상황만 되면 어김없이 시련이 찾아온다. 집안 사정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렸다.


말 그대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됐어요. 준비하던 유학은 물 건너갔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돈을 쫒아 가자니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겠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니 돈이 없어 못 하겠고. 일단 빵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휴학하고 고시원에 살며 1년 동안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새벽 6시면 제과·제빵 수업을 들었다. 오전이 되면 출근해 자정까지 일했다. 힘든 시간이었다. 학교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이 내 마음을 다잡았다. 스물네 살, 학교 문을 걷어찼다. 쓸데없는 고민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돌아갈 곳을 없애 스스로 발등에 불을 떨어뜨린 셈. 서병주 셰프는 한 번 마음 먹은 일은 기필코 밀어붙이고야 마는 남자였다. 일이 손에 익자 더 깊게 배우고 싶었다. 장은철 세프가 있는 ‘퍼블리크’라는 빵집 문을 두드렸다. 존경하는 스승 밑에서 본격적으로 제과·제빵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차선의 선택을 최선의 선택으로 탈바꿈시키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땐 제빵보단 제과에 관심이 많았다. 퍼블리크에 들어간 것도 쿠키, 케이크,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제빵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부서도 제빵으로 옮겼다. 드디어 자신이 찾던 진짜 길을 마주했다. 퍼블리크에서 1년 반 정도 일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누가 새로운 디저트 가게를 여는데 면접 볼 생각이 있느냐는 지인의 물음이었다. 그곳에선 새로운 빵과 디저트를 매일 같이 만들 거라고도 했다. 이어진 말이 마음에 들어 그 ‘누구’와 면접을 봤고 바로 나오라는 대답을 받았다. 그 누구는 지금의 이태원 경리단길을 있게 한 장진우 대표. 그렇게 서병주 파티시에는 장진우 사단으로 디저트 가게 ‘프랭크’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것도 헤드로 말이다.


면접을 보러 갔어요. 그런데 장진우 대표가 몇 마디도 안 나누고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대뜸 묻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물었죠. 날 뭘 믿고 오케이 하느냐고요.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꺼내 케이크 사진을 보여줬어요. ‘이런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 근데 넌 빵만 만들면 된다. 일본에서 아는 사람이 제과장으로 올 거다.’ 그래서 출근하기로 했죠. 그런데 ‘뻥’이었어요.(웃음) 일본에선 아무도 오지 않았고, 결국 제가 헤드가 됐죠.”



 



제빵을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제과에 다시 집중하게 된 상황. 도망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한 가게의 책임자가 된다는 건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었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인테리어부터 시작해 가게의 모든 걸 통솔하며 부지런히 일했다. 잠은 하루 4시간으로 족했다. 나머지 시간 모두를 가게에 쏟아부었다. 직원들과 매일 같이 머리를 맞댔다. ‘어떻게 하면 이 구석진 가게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그렇게 탄생한 게 기린롤이다. 프랭크를 상징하는 무지개롤도 빼놓을 수 없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이름 모를 프랭크를 내로라하는 디저트 가게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승승장구했다. 프랭크는 백화점에 입점하고 지점도 냈다. 공장을 지어 빵을 만들어 납품할 정도였다. 여기에 요리하는 남자가 붐을 일었다. ‘장진우 골목’ 덕에 경리단길은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했다. 서병주 파티시에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여러 매체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고 <올리브쇼>에 출연하게 됐다. 하지만 더는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밀려드는 일에 힘이 부쳤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미안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정말 원하는, 빵을 만드는 제빵을 하고 싶었다.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빵집을 시작하다

누구는 ‘정점’이라고 볼 수도 있을 그때. 서병주 파티시에는 스스로 프랭크를 나왔다. 배움의 시간이 짧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배우겠다는 자세로, 아래 직급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미 유명세를 떨친 파티시에를 받아 줄 가게는 없었다. 이력서를 넣으면 오히려 책임자 자리를 권했다. 


그러던 중 아는 사람이 자신의 건물에 자리가 비었다고 했다. 직접 가게를 운영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배우고 싶어 나왔던 터라 장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 기왕 나온 거 한 번 해보자고, 꿈꿔왔던 가게에서 원하는 빵을 만들어 보자고.


서병주 파티시에가 평소 꿈꾸던 빵집은 명확했다. 예전 KBS에서 방영한 <100년의 가게>에 등장한 가게들이다. 소박해도 오랜 시간 꾸준히 발길이 이어지고, 재밌는 이야기까지 가득한 그런 빵집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지금 베어스덴 자리 3층에서 시작했다. 자신이 평생 운영하고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빵집의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예쁘다’, ‘귀엽다’, ‘재밌다’ 할 수 있는 빵들로 가득 채울 ‘달곰빵집’이었다.



정말 작은 가게로 시작했어요. 공방처럼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정말 원하는 빵을 제약 없이 만들고 싶었거든요. 가게 이름엔 제 별명인 ‘곰’을 넣고, 완전히 달다는 느낌의 ‘달콤’보다 감칠맛 있게 달다는 느낌이 강한 ‘달곰’이라 지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빵이 그런 빵이거든요. 완전히 단 빵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달지 않은 빵도 아니고.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맛있고 예쁜.”



 

 


이런 꿈을 좀 더 빨리 실현할 수 있도록 서병주 파티시에의 누나가 직장까지 그만두고 달곰빵집에 합류했다. 가게 이름이 ‘곰들의 소굴’을 뜻하는 베어스덴으로 바뀐 이유다. 1개 층만 쓰던 가게는 2개 층으로 늘었고, 웬만한 빵집보다 작긴 해도 구색은 갖추게 됐다. 서병주 파티시에는 누나와 두 가지 약속을 했다. ‘언제나 겸손하고, 잘 돼도 욕심부리지 말자.’ 그래야 사람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100년의 가게들처럼 말이다.


베어스덴은 누구나 부담 없이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빵집이다. 가격도 항상 그대로라 오히려 손님들한테 혼이 나기도 한다. 결국 본인이 학창시절 아쉬워했던 그 맛, 달곰한 맛의 빵을 즐길 수 있는 가게가 바로 베어스덴이다. 요즘도 서병주 파티시에는 매일 같이 아침 9시면 가게에 나와 빵을 만든다. 오너 파티시에인데도, 문을 연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5시부터 가게에 나왔다.






 

최근 들어 서병주 파티시에는 좀 더 여유를 갖고자 한다. 그래서 직원도 뽑았다. 대신 그 여유를 다양한 음식을 맛보러 다니는 데 쓰려고 한다.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보며 더욱 참신하고 재밌는, 새로운 빵의 영감을 찾아다니고 싶어서다. 열정 그득한 훈훈한 모습과 달곰한 빵을 맛보고 싶다면 얼른 연남동으로 가보시라. 서병주 파티시에가 음식을 찾아 언제 여행을 떠날지 모른다. 달곰한 빵만 원한다면 상관없다. 가게 문은 월요일 빼곤 항상 열려있다.







Writer 곽봉석

Photographer 김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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