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여행
애간장 녹이는 이 맛!
음식의 감칠맛을 살려주고 풍미를 더해주는 간장은 아시아 요리에서 두루 쓰이는 대표적인 식재료다.
애간장 녹이는 맛으로 아시아 전역에 퍼진 간장의 다양한 쓰임을 살펴본다.
자투리 재료를 캐러멜 향 간장으로 볶아낸
나시고랭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간장으로 크찹 마니스(Kecap Manis)가 있다. 인도네시아어로 ‘달콤한 간장’이라는 뜻의 크찹 마니스는 간장 향과 캐러멜 향이 함께 나는 걸쭉한 소스다. 맛은 한국의 간장과 비슷한데 짠맛이 아주 약하게 나면서 달콤한 풍미도 함께 지녔다. 인도네시아는 이 크찹 마니스로 여러 가지 요리에 간을 맞추는데, 인도네시아의 대표 요리인 ‘나시고랭’에도 이 크찹 마니스가 들어간다.
나시고랭은 밥에 해산물, 야채 등을 넣고 만든 볶음밥이다. 지역마다 독특한 레시피가 있을 정도로 볶음밥 안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양한데, 고정불변으로 꼭 들어가는 것이 있으니 바로 크찹 마니스다. 나시고랭은 크찹 마니스와 함께 새우를 발효시킨 뜨라시, 고추를 주재료로 만든 삼발, 토마토 케첩 등과 어울려 달콤, 짭짤, 새콤한 맛이 난다.
원래 나시고랭은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아침밥이었으나 점차 인기를 얻으면서 점심, 저녁에도 즐기는 메뉴가 되었고, 급기야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식민 통치했던 네덜란드에도 전파됐다. 인도네시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나시고랭을 맛있게 먹었다고 추억한 바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중국의 음식 문화를 간장으로 버무린
까오 라우
베트남 사람들은 콩과 땅콩으로 만든 간장인 ‘눅툰’에 모든 음식을 찍어 먹는다. 눅툰이 들어간 대표적인 면요리를 꼽자면 단연 호이안 지역의 까오 라우다.
까오 라우는 호이안 지역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물, 돼지 육수, 간장으로 짭짤하게 맛을 낸 베트남식 비빔국수로, 과거 호이안 지역이 무역 중심지였을 때 만들어진 음식답게 일본·중국의 음식문화가 한 그릇의 국수에 다 담겨있다. 도톰한 면발은 우동을, 간장에 비벼 낸 모양새는 야끼 소바를, 쌀면 위 얇게 썬 돼지고기의 조합은 중국의 면 요리를 연상케 한다.
같은 호이안 지역이더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면에 올리는 고명이 각각 다른 것도 특징이다. 돼지고기, 튀긴 돼지껍질, 땅콩, 파, 향채, 숙주 등이 다양한 조합으로 올라가는데 간장 육수의 소스가 특유의 달콤한 맛과 향을 지닌 고명과 어우러지며 쌀국수와는 또 다른 베트남의 특별한 맛을 선사한다. 외식 문화가 발달한 베트남답게 호이안의 노점에서는 저렴한 가격대의 다채로운 까오 라우를 맛볼 수 있어 현지인은 물론이고 전 세계 배낭 여행객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있다.
사탕수수밭의 다국적 노동자가 끓여낸 간장 국수
사이민
이민자가 모여 있는 곳에는 언제나 창의적인 요리가 펼쳐진다. 이 창의적인 한 그릇의 요리에 간장이라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소스로 맛을 낸 국수가 있다. 하와이의 국수 사이민이다.
사이민은 19세기 하와이의 사탕수수밭에서 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 다국적 노동자가 만든 새참 요리다.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이마를 맞대고 만든 국수답게 각국의 음식 문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중국의 면, 일본의 육수, 포르투갈의 햄, 필리핀의 파, 한국의 배추 그리고 아시아의 대표 소스인 간장 등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을 듯한 조합의 하모니가 그야말로 독특하고 이채롭다.
시간이 흐른 21세기, 사이민에 넣는 재료는 스팸, 새우, 옥수수, 어묵, 김 등으로 다채로워졌다. 맑은 간장 국물에 스팸과 옥수수를 넣은 조합이라니. 어디서도 본 적 없고, 상상해 본 적 없는 그야말로 하와이스러운 조합이다. 하와이의 식당과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에서도 먹어볼 수 있다는 사이민. 하와이의 역사와 신선한 로컬 재료가 더해지며 나날이 진화를 거듭하는 하와이의 전통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모택동이 좋아한 중국 최고의 간장 요리
홍샤오로우
중국은 간장으로 다양한 요리를 만든다. 간장과 설탕을 넣어 붉은 색이 나도록 조리하는 ‘홍샤오’라는 조리법이 따로 있을 정도인데, 여기에 고기라는 뜻의 ‘로우(肉)’를 더한 ‘홍샤오로우’는 중국 최고의 간장 요리로 꼽힌다.
홍샤오로우는 살코기와 비계가 반반인 삼겹살에 간장, 빙탕(얼음설탕)으로 맛을 내고, 계피, 팔각, 정향, 통후추 등으로 향을 더해 한 시간 동안 조려낸 요리다. 오랜 시간 불에서 조린 만큼 육질이 부드러운데다 빙탕과 간장 소스가 고기에 착 달라붙어 있어 짭짤하고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중국인들은 이 홍샤오로우를 밥과 채소와 함께 즐겨 먹는데, 중국의 정치 혁명가인 모택동이 이 홍샤오로우를 참 좋아했다고 한다.
국내 중국 요리점에서도 홍샤오로우와 비슷한 음식인 동파육을 만날 수 있다. 항저우식 홍샤오로우를 변형해 소스에 변화를 준 것이 동파육이라고.
Writer 고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