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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맛 기행]
그 행복한 맛을 찾아 떠난 여행

봄날의 고추장



고추장의 진가는 좋은 재료의 조합에 달려 있다. 붉은 고춧가루와 깨끗한 물, 담백한 메줏가루와 바다 맛이 살아 있는 소금은 기본이며 걸쭉한 찹쌀죽과 엿기름, 당화액 등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한 식재료를 최소 6개월 이상 혼합해 숙성시켜야 한다. 더욱이 맑은 햇살과 투명한 바람 없이는 깊은 맛을 낼 수 없기에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곳에서 만드는 고추장들이 유명하다. 최고의 장맛을 찾아 떠나는 순창, 밀양으로의 맛 기행.



영조, 정약용까지 고추장 마니아의 연대기


큰 일교차로 몸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 봄에는 입맛을 잃기 십상이지만 우리에게는 집 나간 입맛을 되살리는 고추장이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 장기(長?-경북 포항)에서 쓴
<장기농가(長?農歌)>의 한 구절을 살펴보면 이 제안은 더 큰 설득력을 얻게 된다.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 먹는 늦은 봄날의 점심…”. 궁핍하고 외로운 유배지에서의 생활이지만 개운하고 매콤한 고추장의 끝 맛에 힘을 얻는 다산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도 하다.


맵고 달콤하며 구수하고 감칠맛 나는 고추장은 한국인의 기호에 잘 맞을 뿐 아니라 여러 음식에 다양하게 쓰이는 우리 고유의 장(醬)이다. 조선 중흥기의 장수왕인 영조 또한 고추장 마니아인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세종과 태종 등 조선의 역대 왕들이 짭짤한 조기를 선호했지만 그는 고추장 없이는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영조 44년(1768년) 7월 28일의 <조선왕조실록>에는 “송이, 생복(전복), 아치(꿩고기), 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맛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를 지켜보면 입맛이란 영구히 늙은 게 아니다”라며 고추장의 풍미와 감칠맛을 예찬한 영조의 얘기가 쓰여 있다. 영조는 궁에서 담근 것보다 민가의 고추장을 더 좋아했는데 유독 사헌부 지평인 조종부(趙宗溥) 집에서 담근 장을 으뜸으로 여겼다. 조종부의 본관이 순창이었으니 순창고추장을 좋아했던 셈이다. 훗날 조종부가 탕평의 원리를 손상시키는 당파 분쟁을 일으켜 그를 내친 후에도 조종부의 고추장을 오래도록 못 잊어 했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꽃보다 장맛! 순창의 봄! 


고추장 만드는 법은 숙종의 어의 이시필이 작성한 조리서 <소문사설(搜聞事說)>에 처음 등장한다. 1740년경에 쓰인 이 조리서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전북 순창을 고추장 명산지로 소개하고 있다.


섬진강 상류에 자리한 순창은 삼한시대에는 물이 맑은 마을이라 해서 ‘옥천(玉川)’이란 지명으로 불렸을 만큼 물이 좋다. 물뿐이랴. 비옥한 호남평야에서 자란 농산물과 태양초 고추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햇볕 등의 기후 조건이 맛있는 고추장을 만드는 최적지에 딱 들어맞는다. 순창에서 만든 고추장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검붉은 색깔과 은은한 향기가 그 첫째이며 먹고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특유의 감칠맛은 여타 지역의 고추장이 대신할 수 없는 순창 고추장만의 강점이다. 매콤한 맛으로 입맛을 돋워주고, 얼큰한 맛으로 시원하게 속을 풀어주는 순창 고추장은 한국인이 꼽는 세계인의 힐링 푸드다.

  
순창읍 백산리에 자리한 ‘전통 고추장 민속마을’은 이 무렵 여행하기가 가장 좋다. 나직한 돌담 안에 홍매가 피어 있고 마당 한쪽으론 금줄을 두른 항아리가 서른 개쯤 놓여있는데 그 운치가 고향집만큼이나 푸근하고 정겹다. 새끼에 부지런히 숯과 고추, 솔가지를 끼우는 한 고부(姑婦)는 고추장을 만드는 데는 일년 내내 손이 필요해서 하루도 멈출 새가 없다고 얘기한다. 메주를 빚어 띄우고 장독에 담근 뒤론 아이 키우듯 돌봐야 하는데 날씨가 좋으면 항아리를 열어 햇빛과 바람을 쏘이고 비를 맞아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단다. 더욱이 간이 맞는지, 군내가 나지는 않는지 매일매일 들여다봐야만 선대의 맛을 지켜낼 수 있다고.


순창을 비롯해 여주, 나주 등 호남 지역 사람들은 찹쌀고추장, 보리고추장, 엿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등을 담가 먹는다. 이중 순창의 찹쌀고추장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으며, 최근엔 순창의 호박고추장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호박고추장은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에 자리한 사찰을 중심으로 전해지던 것으로 찰기는 덜하지만 단맛의 풍미가 그만인 전통 음식이다. 



 




내밀하지만 의외로 산뜻한 밀양의 3월 

    
트렌디 고추장의 선두인 대추고추장과 고구마고추장은 퓨전 고추장이 아닐까 싶지만 실은 호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곡물이 귀한 경상도 화전민들이 만들어낸 전통 고추장이다. 대추고추장의 본거지는 영남의 대표적인 내륙도시 밀양이다. 


최근 복원된 밀양 관아 앞의 약재시장과 규모가 상당한 아리랑시장을 방문해 보면 밀양의 고추장 문화가 순창 못지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씨를 뺀 건대추를 고추장에 버무린 장아찌를 비롯해서 대추를 삶은 물과 보리쌀가루를 혼합해 숙성시킨 대추고추장을 장터 여기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좀 투박한 포장에 담겨 있지만 그 원색적인 밀양의 장맛은 의외로 산뜻하다. 밀양의 대추고추장은 식감이 부드러운 데다 저염식 고추장이어서 건강관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더 유용하다. 밀양 밀성손씨의 아흔아홉 칸 고택만큼이나 깊고 유연한 장맛! 딸기와 이팝나무와 영화 <암살>에서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하던 독립투사 김원봉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봄날의 밀양 여정에서 그 깊은 맛과 향을 꼭 경험해볼 것.




가문을 지켜 온 깊은 맛, 종가집이 함께 이어 갑니다.





 
다양한 고추장의 진가를 이곳에서 경험하세요!  

 

 이천 서경들마을
한적한 농촌 마을에 자리한 서경들 체험마을은 ‘콩’으로 특화돼 있다. 그래서 전통 장류와 두부 음식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데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지로 적격이다. 고추장을 비롯해 메주와 된장, 손두부 등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으며, 3~4월엔 봄나물 캐기와 천연 염색 체험도 곁들일 수 있어 더욱 유익하다.


주소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진상미로 1178번길 32
문의 : 031-634-1089 / www.seogyeong.kr



 서천 해가마을  
이맘때 넓은 갯벌과 푸른 송림, 그리고 탐스런 동백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충남 서천 여행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해가마을 방문은 매콤한 맛으로 또 하나의 기쁨을 선사한다. 충남 교육청 인증 우수 농촌체험학습장인 해가마을에서는 고추를 심고 수확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고추장을 담근다. 아는 만큼 보이는 즐거움을 깨닫게 하는 체험이다.


주소 : 충남 서천군 마서면 합전길 72
문의 : 041- 952-6404



 고추장 익는 마을
순창고추장의 유래지에서 경험하는 최고의 전통장 만들기 클래스. 전통고추장제조기능인이 전수해주는 순창전통고추장 담그는 노하우를 즉석에서 배워 임금님께 진상하던 맛에 도전해 볼 수 있다. 체험 후 숙성된 고추장을 예쁜 용기에 담아가는 즐거움도 크다.


주소 : 전북 순창군 구림면 산내길 38
문의 : 063-653-7117 / www.gochujangvillage.com




Writer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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