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여행
국내 한옥 여행 Best 5
겨울 하면 눈 내리는 풍경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따뜻한 아랫목이 있는 고택에서의 하룻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다. 따끈한 온돌방과 고운 한지로 정성스럽게 도배한 방이 있는 한옥은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다. 그래서 더더욱 설렌다. 누군가에게는 향수와 추억을 선사하는 곳,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엄마의 품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곳, 한옥. 그 이름만 들어도 다양한 감정이 교차되는 것은 아마도 한옥이 가진 힘이 아닐까.
세계문화유산에 빛나다, 하회마을
경북 안동
경북 안동 하면 자연스레 하회마을을 떠올릴 정도로 하회마을은 안동 대표 여행지로 각광받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전통가옥들이 모여 사는 마을 형태가 지금껏 유지되고 있는 하회마을은 한국의 전통마을 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하여 지난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회마을 안에는 지금도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는 주민들과 함께 곳곳에 유서 깊은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다. 조선 시대 ‘하늘이 내린 재상’이라 불렸던 서애 류성룡의 종택인 ‘충효당’ 앞마당에는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하회마을 방문을 기념해 심었던 구상나무가 자라고 있다. 하회마을 한가운데는 수령 60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우뚝 서 있고, 정월 대보름 때 마을의 안녕과 무병,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가 이루어지는 삼신당 또한 자리 잡고 있다. 마을을 모두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소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솔숲이 펼쳐진다. 이곳이 만송정이다. 하회마을 만송정 솔숲을 지나다 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함께 강 건너편 위용 넘치는 바위 절벽 부용대가 보인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전체를 내려다 보면 풍경이 가히 장관이다.
500년 세월을 머금다, 외암마을
충남 아산
외암마을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설화산 자락 남서쪽 양지바른 곳에 마을이 들어섰고, 마을 앞으로 외암천이 흐르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마을에는 기와집과 초가집 등 한옥 60여 채가 돌담을 따라 옹기종기 모였다. 주요 한옥으로 건재고택(영암댁), 참판댁, 감찰댁 등 택호가 있는데, 주로 고택 주인의 관직이나 부임한 지역 이름을 따 붙였다. 한옥 사이로 난 고샅길을 따라 마을을 둘러보면 반석정 아래 외암천의 너른 바위를 볼 수 있다. 외암동천(巍岩洞天)과 동화수석(東華水石)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져, 옛 선비들이 사랑한 아름다운 풍경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낮은 언덕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나무를 거꾸로 꽂아 만든 듯한 장승 두 기가 여행자를 반긴다. 마을의 전통가옥은 대부분 잠겨 있거나 실제로 거주하는 집이 많아, 여행자가 집 안을 둘러보기 쉽지 않지만 한옥과 어우러진 고샅길이나 정감 어린 농촌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걸음이 가벼워진다. 대신 건재고택 돌담에서 아쉬움을 달래보자. 소나무, 단풍나무 등 정원수와 돌담이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최고의 포토 스폿이다.
99칸 사대부가에 머물다, 선교장
강원 강릉
우리나라 한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강릉 선교장이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 상류주택인 선교장은 전주 이씨 가문의 효령대군 11세손인 이내번이 터를 잡은 곳이다. 행랑채와 안채, 사랑채, 별당, 사당, 연당, 정자까지 갖춘 완벽한 조선 사대부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배로 다리를 만들어 경포호수를 건너 다녔다고 한다. 이제 호수는 논이 되었고 야산에는 노송이 자랐지만 여전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보내는 하룻밤은 비록 불편함이 있을지라도 추억으로 남기기에 좋다. 둘이, 혹은 셋이 묵기에 적당한 크기의 객실에는 한옥의 정겨움이 있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과 활래정(活來亭)이란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는 풍류를 즐기던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꽤 추운 날씨에도 마루에 나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을 포기할 수 없듯, 처마 끝에 걸린 달을 보는 즐거움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한옥만의 매력이다.
향기를 좇아 남쪽으로 나서니, 남향재
전남 영암
남향재는 전남 영암의 대표 여행지인 왕인박사유적지에서 3km 정도 떨어져 있다. 남향재를 병풍처럼 감싼 월출산, 그리고 월출산만큼 듬직한 남향재가 시린 마음에 위안을 준다.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본관은 팔작지붕을 얹은 영락없는 한옥인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퍽 새로운 모양새다. 단층이 아닌 복층으로 건물을 올린 것, 2층에 난간을 둘러 발코니를 마련한 것, 출입구에 팔작지붕을 덧대 ‘T’ 자 구조로 마무리한 것까지 모든 것이 새롭다. 남향재의 매력은 바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다. 건물의 뼈대는 목재를 기본으로 하고, 벽체는 단열과 내진을 고려해 현대식으로 시공했다. 한옥의 전통적 아름다움은 그대로 계승하면서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적극 수용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주인장은 이를 ‘신(新)한옥’이라 말한다.
별채는 한옥 느낌을 조금 더 강조한 공간이다. ‘우리채’와 ‘나라채’로 이름 붙였다. 앞마당이 딸린 독립 공간으로 우리채는 진도의 외할머니 집을 모티프로 했고, 나라채는 집주인의 신혼살림을 위해 지은 만큼 정성을 쏟은 공간이기도 하다. 본관과 별채의 지붕 모양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제법이다. 남향재에서 가장 늦게 선보인 별관은 맞배지붕을 얹어 간결하지만 절제된 품위가 느껴져 더욱 멋스럽다.
국내 최대 규모 한옥마을, 전주 한옥마을
전북 전주
한옥이 하나둘 모여 마을을 이룬 곳은 많지만 아쉽게도 도시에서 그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한옥마을을 유지한 몇 곳이 전통문화의 자랑으로 손꼽히는 명소다. 오랜 세월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을 지탱한 전주의 힘은 무엇일까. 조선 시대의 전주는 전라감영이 위치했던 곳이다. 덕분에 정갈한 음식, 수준 높은 예술 활동이 발달할 수 있었다. 전주에서 한지, 비빔밥, 영화 등 관련 축제가 다양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 전주 한옥마을도 그러하다. 한복을 입은 여행객이 한옥을 배경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즐긴다. 전주 한옥마을이 자리한 풍납동은 일제강점기에 한옥을 지으며 거주민이 똘똘 뭉친 의미 깊은 곳이다. 골목이 좁아도 상관없다는 듯 오밀조밀하게 형성된 한옥마을에는 일제에 저항하고자 하는 정신이 깔려 있다. 약 70년 전, 풍남문에서 바라본 서쪽은 일본인의 집, 동쪽은 선조의 한옥으로 대립 구도가 선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그 세월의 흔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자리가 오목대라는 곳이다. 오목대에 가기 전 가까운 관광안내소에서 관광지도를 챙기고 궁금한 점도 물어보자.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소답게 이정표와 안내판이 충분하게 설치돼 있어 관광지도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다.
Writer 기수정 여행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