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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여행

[맛 기행]
한반도의 육·해·공 재료를 모아 만든

어육장

 


과거 궁중과 명문 사대부가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다는 어육장. 조선 시대 조리서인 <규합총서>에 ‘그 맛이 아름답기 그지없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한반도에서 나는 귀한 식재료를 모두 모아 만들었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맛이다.




오랜만에 된장찌개를 끓이면서 설레다 


온 신경을 집중해 된장찌개를 끓인다. 집에서 밥하는 사람이 된장찌개 끓이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해산물이나 고기로 재료만 바뀔 뿐 다른 반찬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랜만에 된장찌개 끓이면서 설레었다. 처음 이 감정을 느낀 건 15년 묵힌 된장으로 찌개를 끓일 때였다. 별다른 육수 재료가 없어도 그 자체가 품고 있는 맛으로 충분하다는 설명을 속으로 되새긴 기억이 있다. 별거 없이 된장만 넣었지만 시간이 만들어 낸 맛은 황홀했다. 혀만 스치고 지나가는 감칠맛이 아닌, 미각세포 하나하나를 적시고 가는 감칠맛의 묵직한 구수함이 있었다. 오늘은 15년 묵힌 된장 못지않은 별미 된장으로 찌개를 끓이고 있다. 한반도에서 나는 육·해·공 재료를 모아 만든 장, 어육장으로 말이다. 



 


재료 면면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어육장은 반가나 왕실에서 먹던 고급 장이다. 들어가는 재료를 들어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듯싶다. 말 그대로 어육장은 어육(漁肉)이 들어간다. 우선, 어(漁)로는 도미, 조기, 가자미, 민어 등 흰살생선이 주로 들어가고 전복이나 새우 말린 것도 들어간다. 육(肉)은 닭고기, 소고기다. 기름기가 많은 붉은 생선이나 돼지고기는 들어가지 않는다. 지방이 많아질 경우 맛이 탁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깨끗이 씻은 장독에 된장과 소금을 넣고 생선과 고기를 켜켜이 넣는다. 중간중간 재료 사이에 메주를 넣는다. 재료를 채우고 나면 장독 끝까지 소금물을 채운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어육장 만들기가 시작된다. 땅속에 장독을 묻고 1년이란 시간을 더하면 장이 된다. 장이라 불러도 어찌 보면 풋과일 같은 상태다. 맛있는 밥을 지으려면 뜸의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이야 전기밥솥이 알아서 해주지만 솥밥을 하는 이들은 같은 쌀이라도 물과 뜸의 조절에서 밥맛이 차이가 난다. 뜸이라는 게 쌀이 밥이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이듯, 1년 숙성된 어육장도 된장과 간장으로 장 가르기를 한 다음에 뜸 들이듯 한번 더 숙성을 한다. 한 해 두 해 묵히면 묵힐수록 장맛은 시간을 머금어 깊어진다.



 


감칠맛에 감칠맛을 곱하다


어육장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만 보더라고 맛이 절로 그려진다. 좋은 멸치로만 육수를 내도 국물맛은 맹물로 끓일 때와 천지 차이다. 감칠맛에 감칠맛이 곱해졌기에 맛 차이가 난다. 된장은 그 자체로 조미료다. 미생물 작용으로 단백질이 아미노산으로 분해가 된다. 아미노산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분자이자 개별의 맛이 있다. 단맛, 조금은 쓴맛이 나는 등 각각의 맛이 있는 것. 그중에서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맛이 바로 감칠맛이다. 고기, 해산물,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는 글루탐산이 가장 대표적이다. 콩나물에 많이 든 아스파라긴산도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다. 여기에 핵산계 감칠맛을 더하면 맛이 몇 배로 증폭이 된다. 즉 맛이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가 되는 것이다. 멸치, 조개, 버섯에는 글루탐산 못지않은 핵산계 감칠맛이 많이 들어 있다. 된장과 만나면 맛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즉 육·해·공 모든 재료의 감칠맛이 녹아 있는 어육장으로 요리를 할 때는 따로 육수가 필요 없다. 장 자체가 이미 훌륭한 조미료이자 육수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맛있는 장을 만들려면 아마도 몇 년 묵은장에 갖은 육수를 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음식은 역시 장맛이 먼저다


‘한국요리와문화연구소’를 운영하시는 윤옥희 선생님께 어육장에 대해 여쭈러 갔다. 장독대 옆 묵은 자리만 확인하고 나오는 길에 선생님이 2017년에 장을 가른 귀한 어육장을 조금 내주셨다. “맛은 봐야지”하면서. 귀한 식재료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첫사랑처럼 설렘을 동반한다. 집으로 돌아와 찌개를 끓일 때까지 두근거림이 이어졌다. 재료 위에 어육장을 올렸다. 그리고 숟가락에 남은 장을 살짝이 맛봤다. 미각세포를 통과한 감칠맛이 입안 구석구석을 돌고 돌았다. 혀끝에서 끊임없이 감칠맛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왜 반가에서 이 장을 만들어서 먹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된장찌개를 끓였다.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우리 음식은 역시 장맛이 먼저라는 것을.





Writer 김진영 푸드 칼럼니스트

25년간 식품 MD로 활동하면서 식재료 산지를 찾아 전국 곳곳을 누빈 전문가.

여행과 먹거리에 담긴 이야기를 접목해 바른 식재료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행자의 식탁’ 대표이기도 하다. 현재 여러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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