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B급 며느리는 처음이지?
슬기로운 B급 며느리의 순도 200% 리얼 다큐
선호빈 감독 & 며느리 김진영 씨 인터뷰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고부갈등을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담은 영화가 2018년 개봉했다. 노동, 환경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비롯해 우리 이웃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해온 선호빈 감독의 실제 가족 이야기를 다룬 이다. 애지중지 키워온 고양이를 결혼하면 갖다 버리라는 시어머니, 갈등 끝에 2년간 시댁에 가지 않기로 한 며느리, 오늘만 일단 참고 넘기라고 말하는 남편까지. “저런 독한 며느리가 우리 집에 들어오지 않아야 할 텐데”, “저런 시어머니랑 어떻게 살아”, “저 며느리 별나네”, “답답하다” 영화평이 이렇듯 극과 극을 달리는 것은 여자라면 겪게 될 혹은 겪고 있는 혹은 겪어야만 하는 역할로서 자신을 투영하고, 그 역할 뒤에 억눌러 왔던 다양한 감정들이 각 역할에 공감대를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로서는 이례적으로 2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모은, 보고 나면 더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이 영화. 영화와 함께 책으로도 출간 되어 화제를 일으킨 의 남편이자 감독 선호빈 씨와 주인공이자 며느리 김진영 씨를 만나보았다.
난 이상한 여자랑 결혼했다
선호빈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보통 여자 김진영 씨는 이렇게 결혼을 하면서 이상하고 특이한 여자가 되었다. 며느리라면 응당 갖춰야 할 도리를 묵묵히 해내고 나보다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고분고분한 며느리를 김진영 씨는 거부했다. 그리고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싫어요”를 당당하게 내뱉는 B급 며느리가 되었다.
선호빈 감독이 B급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A급이 뭔데?’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하고 그 역할을 잘 수행하는지를 평가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역할에서 벗어나면 가혹한 비난이 쏟아집니다. 며느리는 역할의 모순이 극대화되는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착한 며느리, 훌륭한 며느리, A급 며느리는 대체 무엇인가 묻고 싶었습니다.”
B급이라는 표현이 썩 불쾌할 법도 하건만, 김진영 씨는 쿨하게 인정한다. “남편이 저에게 종종 김진영 ‘넌 B급이야’라거나 ‘너는 또라이야’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하는데, 이런 표현에는 비난의 의미보다는 호감이나 애정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설령 제가 A는 받을 수 없는 낙제점의 며느리라는 의미라 해도 남편의 평가를 존중해요.”
영화 초반에 명랑한 목소리로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이 결혼생활에 뛰어들기 전에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면...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억울하고 비참해
오빠 부모님한테는 오빠가 효도해
제사에 며느리가 꼭 참석해야 돼?
내 할아버지도 아니잖아.
오빠 할아버지잖아!
“이 결혼생활에 뛰어들기 전에 내가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면… 지금 내 모습이 너무 억울하고 비참해” 김진영 씨가 처음부터 B급 며느리는 아니었다. 안부 전화도 드리고 시부모님께 편지를 쓰는 노력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지겠지, 참기도 했다. “신혼 초반에는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 당시에는 시어머니께서 정말 사소한 것 하나하나 관여하려 하셨고 돌아오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 것인 지도 제 맘대로 결정할 수 없을 때가 많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많은 며느리들처럼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참아봤지만, 아이를 낳고는 더 심해지는 것 같아 문제가 생기면 즉시 표현하고 부딪히는 것으로 방법을 바꿨습니다.”
그렇게 갈등은 시작됐다.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부나 고부간의 갈등은 상대방의 말투, 눈빛, 태도 등으로 유발되고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김진영 씨가 촬영을 요구했다. 다툼이 많은 사실 관계를 못박아 두기 위한 증거이자, 평화를 찾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렇게 첫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채증’의 용도로는 거의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REC 버튼을 누르면서 어렴풋하게 영화가 될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동료 영화감독들 특히 결혼 10년차 이상의 선배 감독들이 이 영상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영화로 발전시켜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이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겪는 이 문제가 공감의 폭이 무척 넓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이런저런 부담은 없었을까. 이 질문에 김진영 씨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의 약점이자 강점인데요, 저는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체로 개의치 않는 성격이고 사생활이 공개된다는 측면에서도 저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격렬한 싸움을 하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남편이 부담스럽거나 혹은 꼴 보기 싫었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선호빈 감독은 어땠을까. “오히려 부담을 덜어준 것 같아요. 콘텐츠를 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너무 심각하거나 추악한 내용은 넣지 않을 수 있고, 어느 한쪽을 악마화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제 가족인걸요. 며느리와 시어머니 모두가 인간으로 느껴질 수 있는 구성과 편집에 많은 고민을 할애했던 것 같습니다. 이 두 사람을 신경쓰느라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 저입니다. 기사나 영화 댓글에는 남편에 대한 욕이 절대적으로 많더군요.”
그러면서 선호빈 감독은 TV에서 수십 년 동안 우려먹는 소재이기도 한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가 심각하면서도 유쾌한 ‘달콤쌉싸름’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김진영 씨를 꼽았다. “이 영화는 김진영이라는 캐릭터에 절대적으로 빚지고 있습니다. 강직하고 원칙적이며 고집불통이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주인공, 김진영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나를 지키며 살 수 있다면, ‘B급’으로 살아도 괜찮아
며느리는 그저 아들과 결혼한 여자라는 그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어떤 인간관계든 일정한 거리두기가 있을 때 이상적인 관계가 된다고 말하는 당당한 B급 며느리 김진영 씨. 그녀의 투쟁은 아직 진행중이다. “저는 이 세상에 며느리만 인내하고 견뎌야 할 어떤 부당한 대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영화 속 저와 같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나의 불편함과 상처를 표현하고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그 순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남편들은 나의 아내가 용기를 내서 감정을 표현했을 때 부디 아내를 보호해주기를 바랍니다.”
영화 속 남편 선호빈 씨는 우유부단했고, 방관했다. 그래서 등 터진 새우꼴이 되었다, 스스로 말한다. 그리고 그에게도 변화가 있었다. 고부사이에서 남편은 제삼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선호빈 감독. 남편은 갈등에서 회피하거나 중재하기보다 직접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제 경험으로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태도로 해결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영화에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나중에 저는 고래 중 하나로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누굴 중재하려는 오만한 생각도 버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참전을 하고 나니 전쟁은 싱겁게 끝났던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나 아내를 위해서 무엇을 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서 했던 행동이 효율적이었습니다. 애초에 이 두 사람은 내가 아니면 만날 일 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영화 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선호빈 감독은 지금 독립영화를 촬영 중이다. <수카바티>라는 제목으로 FC안양이라는 2부리그 축구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동시에 돈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제작하고 있다.
“저와 가족들이 또 나오기 때문에 속편이라고 느낄 수도 있고요. 이번에는 제가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제목은 <돈 다큐>입니다. 영화제작자의 불안한 미래를 바꿔보고자 ‘선호빈’이 직접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