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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교육]
인문학을 통해 배우는 행복의 기술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아야 행복하다

“유익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롭기 때문에 사랑하며, 쾌락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쾌하기 때문에 사랑한다. 또한 그들은 상대의 인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하거나 유쾌한 범위 안에서 사랑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행복론의 원조에 해당하는 고전이다. 말하자면 서양 행복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책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인간과 친애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은 고상한 게 결코 아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고상한 담론을 펼치기보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친구를 잘 사귀는 기술’을 ‘친애’라는 덕목으로 들려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친애의 기준으로 유익함과 쾌락, 선이라는 세 가지를 든다. 먼저 상대의 유익한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얻을 어떤 좋은 것 때문에 사랑한다고 인간의 속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요즘 우리들 자신이나 우리 사회에 그대로 대입해 놓고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서로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희망을 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서로를 유쾌하게 생각한다.

“상대의 유익함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얻을 어떤 좋은 것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쾌락 때문에 사랑하는 이들도 똑같다. 이때 사랑받는 사람은 그 사람됨 때문이 아니라, 어떤 좋은 것 혹은 쾌락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다.” 

유용성 때문에 친구가 된 사람들은 이익이 다하면 서로 헤어진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여 친구가 된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단지 자신이 누리게 될 이득을 사랑하여 친구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쾌락이나 유익함을 위해서는 열등한 사람들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또는 훌륭한 사람들이 열등한 사람들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한쪽이 더 이상 유쾌한 인물이 못 되거나 유익한 인물이 못 되면 다른 한쪽이 더 이상 그를 “사랑하기를 그치기 때문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말이 있는데 무려 2,400년 전에 쓴 이 글에 오늘날 ‘웃픈’ 인간관계의 단면을 그리고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친애는 ‘선(덕)’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완전한 친애는 선하고 덕에 있어 서로 닮은 사람들의 친애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상대가 선한 사람인 경우에만 서로에게 선한 것을 원하며, 또 그들 자신이 선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직 선한 사람들만이 서로에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거 없이 남이 헐뜯는 말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것도 오직 선한 사람들 사이에 친애가 있을 때뿐이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신의가 있다. 말하자면 선에 기초한 친애는 친구를 헐뜯는 말을 들을 때조차 친구를 의심하지 않고 친구를 믿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평소 가까운 친구로 지내지 않는 친구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를 헐뜯거나 비방할 때 함께 ‘최애친구’를 비난한다면 선에 기초한 친애가 아니라는 말이다.



 


좋은 관계와 친애 


이뿐 아니라 유익함과 쾌락은 서로 그 유익함과 쾌락을 충족시켜줄 때라야 친애가 가능하다. 한쪽에서 유익함과 쾌락을 제공하지 못하면 그 관계는 계속 유지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서로 유익함과 쾌락을 줄 때에 이루어지는 친애는 ‘공리주의적 친애’이다. 

공리주의는 유용성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하는 사상이다.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가 인간의 이익과 행복을 늘리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가 하는 유용성과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 주변에 공리주의적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언젠가 이익이 없다면 떠날 수 있는 친구라고 하겠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병에 대한 이야기는 친애의 낮은 단계인 유익함과 쾌락을 상대에게 주지 못한다 이야기한다. 아픈 이야기, 질병, 투병, 죽음 등은 누구나 회피하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이다. 성미 마른 사람은 친애 자체를 꺼린다. “서로 사귀는 것을 고통스럽고 즐겁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는 누구도 함께 지낼 수 없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여기서 행복에 이르는 ‘대화의 기술’도 배울 수 있다. 진정한 친애를 하고 싶다면 아프다는 이야기, 불행하다는 이야기, 남을 헐뜯는 이야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가능하면 하지 말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주문하고 있다.



 


행복에 이르는 길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은 크게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 관조적 생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고 이 중에서 가장 행복에 이르는 길은 향락적 생활도 정치적 생활도 아닌 관조적 생활이라고 강조한다. 관조적 생활을 하려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많이 갖추지 않아도 마음만 바꾸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행복지수가 바닥권이라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국민이 향락적 생활, 정치적 생활에 너무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라고 했지만 정작 그가 이상적으로 추구한 인간형은 관조적 생활을 지향하는 인간이었다. 물론 세상을 달관하듯이 살 수 없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응하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은 어떤 생활을 하더라도 내면적인 마음의 관조를 추구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행복한 생활로 이어지게 하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금은 부족해도 마음부자가 진정한 부자라는 말이다. 부부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는 것도 소박하지만 관조의 생활로 가는 행복의 길이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 이르는 조건으로는 내적인 선이든 외적인 선이든 과함도 좋지 않고 부족함도 좋지 않으며 다만 너무 과하지도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상태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인간관계에서 너무 유익함이나 쾌락을 좇지 않고 선에 기초한 친애를 추구할 때, 그리고 너무 향락적이고 정치적인 생활보다 관조적 생활을 추구할 때, 그리고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풍족하지도 않는 중용의 생활을 추구할 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인문학에서 행복의 길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도서 



 

공자의 인생수업 논어를 듣다 

저자 공자 / 심범섭 역자 / 평단

인생의 길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삶의 지침서 <공자의 인생수업 논어를 듣다>. 사람답게 사는 길, 성실한 자세와 배려하는 마음으로 남을 대하는 법, 모든 일을 중용의 도로써 행하는 법 등 총 9장으로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덕목을 주제별로 묶어 재구성하고 논어에 담긴 말씀을 주제에 맞게 각 장에 배치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




 

행복의 인문학 

저자 조태연, 권석만, 안양규, 김용남, 채정호 / 석탑출판

종교와 과학의 영역에서 행복을 보는 시각을 담았다. 종교 영역은 기독교와 불교, 유교를 중심으로 다루었으며, 과학영역은 긍정심리학과 임상적 차원으로 나누어 행복에 대한 관점을 정리했다. 예수를 통해본 기독교의 행복관과 붓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한 행복, 유교의 행복론, 임상 현장에서의 한국인의 행복, 긍정심리학의 행복관과 여정을 장을 나누어 담았다.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 

저자 백성호 / 판미동

저자 백성호는 <인문학에 묻다, 행복은 어디에>에서 굴지의 석학들에게 현실 진단과 ‘행복’을 묻는다. 천문학부터 철학, 종교 그리고 작은 우주인 기생충학에 이르기까지, 각각 한 분야에 대가를 이룬 이들 17명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중요한 ‘행복’과 ‘가치’라는 화두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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