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미식&여행

[맛 기행]
한국의 문화를 넘어 세계 인류의 자산으로

씨간장

 

ⓒ동아일보



 



지난 3월 문화재청은 ‘한국의 전통 장(醬) 문화’를 2022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은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표목록 또는 긴급목록에 각국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것으로, 문화 다양성의 원천인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알리고,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가적ㆍ국제적 협력과 지원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도는 산업화, 현대화 등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인류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시작됐다. 문화유산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가 함께 보존해야 할 인류의 귀중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 3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강강술래’,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남사당놀이’, ‘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 ‘제주해녀문화’, ‘판소리’, ‘한산모시짜기’ 등 21개의 무형문화유산을 등재했다. 유네스코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다수 보유한 다등재국에 대해 등재 심사를 2년에 1건으로 제한하고 있어, 장 문화는 2년 만의 등재신청이다.

문화재청은 장 문화의 등재신청 이유로 ‘장은 한국 음식의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서 장을 담그고 나누는 행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고 전승하는 데 이바지해 왔음’을 꼽았다. 장 담그기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된 우리 무형유산으로, 해외 동포를 포함한 전 국민이 장을 담그고 나누는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한다는 것 또한 선정 이유다.

간장, 된장, 고추장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장은 오랜 세월 면면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으며, 이제는 한식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집집이 모여 다 함께 장을 담그고 나누는 ‘음식 공동체 문화’는 문화사적 가치가 큰 무형자산이자 앞으로도 계승?발전시켜야 할 고유하고 아름다운 전통이다.


 



한국 장 문화의 뛰어난 독창성, 씨간장


이렇듯 차별화된 우리 장 문화에서도 가장 독특한 산물은 바로 씨간장이다. 문자 그대로 ‘씨앗이 되는 간장’이라는 뜻의 씨간장은 새 간장을 만들 때 종자로 쓰이는 귀한 간장이다. 잘 담가 오래 묵힌 진간장 중에서도 짧게는 십수 년에서 길게는 몇백 년까지 살아있는 씨간장을 조상들은 금처럼 귀히 여겼다.

단순히 오래 묵었다고 씨간장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관이 잘 된 씨간장은 세월이 지날수록 짠맛은 빠지고 단맛과 감칠맛이 깊어지는데, 햇간장의 어설픔을 채워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감칠맛을 지녀야 비로소 씨간장으로 인정받았다.

씨간장에 햇간장을 붓는 것을 겹장, 또는 덧장이라고 하는데 묵은장에 햇장을 섞는 방식 또한 한국의 장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해마다 수확하는 콩의 품질이 다르기에 장맛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콩뿐 아니라 메주 상태에 따라 변하기 쉬운 것이 바로 장맛이다. 이처럼 들쑥날쑥하기 쉬운 장맛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우리 조상들은 가장 뛰어난 맛의 씨간장을 소중히 간직했고, 씨간장을 첨가함으로써 새로 담근 햇간장의 변덕스러운 맛을 조절하고 균일한 장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씨간장이 장맛을 조절할 수 있는 비결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유익균 덕이다. 간장 숙성 과정을 통해 수용성 단백질 분해물인 아미노산과 펩타이드뿐만 아니라 지방의 분해 산물까지 녹아드는 이때 각종 유기산, 핵산, 젖산 등 인체 유익균들이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유익균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더욱 농축된 유효 발효균으로 변하고, 이 유효균들이 햇간장으로 옮겨진 뒤에도 활성화되어 똑같은 맛의 간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세계가 함께 즐길 씨간장의 깊은 맛


씨간장의 맛과 숙성의 관계는 실제 연구를 통해서도 밝혀졌는데, 1년 미만의 간장에 비해 7년 이상 숙성한 간장에서 유익균과 효모, 감칠맛을 결정하는 유리 아미노산의 함량이 훨씬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씨간장은 탄수화물 위주인 우리 식단에서 영양의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도 해왔다. 조상들은 씨간장을 통해 부족하기 쉬운 필수 아미노산과 지방을 자연스럽게 보충해왔으며, 장 발효라는 특수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원재료인 콩에는 없던 여러 유효성분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씨간장의 가치는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본부 레스토랑에서 연 ‘한국 발효식품 콘퍼런스(L’art de la fermentation coreenne)’가 현지의 관심을 모았는데, 그중에서도 370년 묵은 씨간장 시식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류의 한 형태인 K-식품 열풍에 힘입어 우리 장류의 수출 또한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관세청에 따르면 간장 수출액 또한 꾸준히 성장하면서 2020년에는 1,607만 달러 수출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에 더해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가 완료되면 우리 장류의 우수성이 더 많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한국 고유의 장 문화에 선조들의 지혜가 결합된 씨간장의 깊은 맛을 세계가 함께 즐길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페이지 위로
알림

대상그룹의 건강한 소식지 <기분 좋은 만남>을 정기적으로 만나보세요

무료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