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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트렌드]
옛 맛에 흠뻑 빠진

‘MZ세대 할매들’

 Sweet Mugwort Cake @today_dessert



자극적인 ‘맵단짠’ 음식 대신 푸근한 옛날 맛을 찾는 MZ세대가 부쩍 늘었다.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는 이들의 음식 취향은 ‘할매니얼’이라는 거대한 트렌드를 형성하며 식품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식탁에 스며든 ‘할머니 입맛’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바뀌는 가운데에도 지난 몇 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트렌드의 중심을 이끄는 ‘핵인싸’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뉴트로’다. 기성세대의 유물들을 오늘날의 감각에 맞춰 재기 발랄하게 재단하는 MZ세대를 보고 있자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이들에게 복고는 청산해야 할 옛것이 아니다. 기괴한 새로움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현재의 수면 아래에서 잔잔하지만 무게감 있게 흐르는, 분명 존재했지만 함께하지 않았기에 새롭게 느껴지는 ‘낯익은 낯섦’이다. 늘 신선한 것을 찾아 헤매는 MZ세대가 복고를 즐거운 놀이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패션과 인테리어에서 싹튼 뉴트로는 먹거리에도 서서히 스며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 트렌드는 자극 일변도였다. 떡볶이 앞에 ‘엽기’, ‘응급실’이 붙는가 싶더니 한 발 더 나아가 ‘폭탄’, ‘마약’과 같은 무시무시한 단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됐다. 이른바 ‘맵단짠 전성시대’였다. 하지만 세상 모든 자극적인 것들은 언젠가 반드시 물리게 돼 있다. 끝없는 자극에 지칠 대로 지친 맛봉오리들은 음식 본연의 담백하고 건강한 맛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라떼와 케이크에 건강과 장수를 상징하는 흑임자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지극히 유럽적인 마카롱에 너무나도 토속적인 쑥이 첨가됐다.



 

Black Sesame



모든 것이 불안정한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러진 MZ세대 특유의 자기 관리 능력은 입맛의 토속화를 부채질했다. 맵고 달고 짠 음식보다는 싱겁고 은은하고 담백한 요리가 건강한 법. 몸 관리에 진심인 MZ세대가 후자를 찾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행에 민감한 식품업계와 유통가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했다. 건강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에 지친 혀와 위장을 달래기 위해 할머니 입맛을 자처하고 즐기는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푸드’ 트렌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Sweet Black Sesame Cake @today_dessert




할매니얼 푸드의 다채로운 변신


언뜻 생각하면 단조로울 것 같지만, 할매니얼 푸드의 색깔은 상상 이상으로 다채롭다. 커피전문점에서는 현미, 보리, 흑미, 검정콩 등 국내산 통곡물이 함유돼 있어 진한 곡물 맛이 느껴지는 미숫가루의 변주곡 느낌의 음료를 출시했다. 또한 녹차가루 대신 쑥가루를 사용해 쌉싸름한 맛과 향을 끌어올린 쑥 라떼와 쑥 마카롱, 주로 떡과 죽에 들어가는 흑임자를 얹은 흑임자 케이크는 MZ세대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달고나, 발효 보리건빵, 누룽지 과자 등 전통 간식 9종이 지난해 가장 많이 판매된 제품 톱 10에 이름을 올렸다. 약과로 유명한 의정부의 장인한과에는 약과를 사려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그 줄이 얼마나 길었던지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을 약과 구매에 비유한 ‘약켓팅(약과+티켓팅)’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SNS도 할매니얼 푸드로 시끌시끌하다. MZ세대는 다소 어렵고 발음하기 힘든 할매니얼 푸드 대신 ‘할매입맛’을 태그하는데, 그 게시물이 인스타그램에서만 4만 3천 개에 달한다. 자매품 ‘#아재입맛’을 단 게시물도 3만 5천 개를 넘겼다. 할매니얼 푸드 트렌드가 남녀를 가리지 않고 MZ세대 전반에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는 검색 결과다.



 

건빵




영양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음식의 힘’


뉴트로와 MZ세대의 자기 관리 능력이 할매니얼 푸드 트렌드 형성의 주요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각박하고 자극적인 사회 분위기와 이에 대한 정서적 피로감을 원인으로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5월 <추억의 레트로, 미래 금융에서 Begin again>이라는 보고서에서 뉴트로와 할매니얼 트렌드에 대해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의 복잡함과 피로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회피 심리는 과거의 편안함과 근심 없는 시대의 향수를 더 애틋하게 자극하고 최근 코로나로 인한 불안 역시 추억으로 미화된 레트로의 감성에 더 강하게 몰입하도록 이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음식은 생존에 있어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에서 다른 문화 대비 우리의 정서와 더욱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불확실성의 시대가 우리에게 던진 극도의 불안감과 압박감은 맛에 대한 피로도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단순하고 편안한 맛으로 위로받으려는 정서가 널리 퍼졌다. 그리고 이러한 메커니즘은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MZ세대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할매니얼 푸드 트렌드의 이면에는 쑥보다 씁쓸한 현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New + Retro



팥빙수



 

Sweet Mugwort Ice Cream @today_dessert



그렇다고 해서 할매니얼 푸드를 즐기는 MZ세대를 측은하게만 볼 일은 절대 아니다. 이들은 알게 모르게 어려운 대내외적 상황 속에서도 생존과 성장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할매니얼 푸드도 그중 하나다. 자극적인 정크 푸드를 멀리하고 심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골라 먹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노력이자 훌륭한 힐링 방법이다. 따라서 이들의 할매니얼 푸드 트렌드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음식에는 영양소와 칼로리 이상의 힘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된장찌개가 놓인 밥 한 상이면 사그라들었던 기운과 용기가 불쑥 솟지 않던가. MZ세대가 부쩍 할매니얼 푸드를 찾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푸근하고 담백한 건강식으로 몸과 마음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할매니얼 푸드 트렌드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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