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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문교육]
인문학에서 배우는 사랑의 기술

사랑에 대한 네 가지 오해

 



나는 오해한다, 고로 사랑한다


사랑에 대한 오해가 네 가지밖에 없을까. 사랑은 수많은 오해로 우리를 더 상처 내고, 우리는 그 상처 덕분에 사랑에 더 집착한다.

깻잎 논쟁으로부터 이어진 연애 밸런스 게임은 사랑에 대한 온갖 오해들로 채워진다. 심리학자 자크 라캉은 “사랑에 관해 말하는 것, 그 자체가 향유”라고 했는데, 사랑이 희박해져 버린 이 시대, 우리는 사랑에 대한 오해의 담론을 나누면서 사랑을 겨우 향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시작을 교통사고에 비유하는 것도 오해다. 사랑은 고작 교통사고가 아니다. 플라톤은 말한다, 사랑은 뱀에 물리는 것과 같다고. 뱀에 물린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도리가 없다. 사랑에 물려보지 않은 사람은 그 아픔을 알 수 없는 것. 사랑을 한 사람만 사랑을 안다.

플라톤은 덧붙인다, 사랑을 해봐야 ‘철학’을 할 수 있다고. 플라톤 이후 2300년이 지난 지금, 현대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철학자가 드문 이유가 사랑을 해본 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평범한 우리는 당연히 철학자가 아니고, 그 이유는 사랑을 못 해봐서다. 결혼은 했지만, 연애는 했지만, 사랑은 못 해본 것이다.

사랑에 대한 오해 네 가지를 풀고, 플라톤의 ‘뱀에 물린 고통’ 같은 사랑을 가늠해 보자.



 


첫 번째 오해: 나를 먼저 사랑하라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반론한다.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한에서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나는 나 자신을 벗어나기 위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자신을 세계로부터, 상처로부터 보호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것은 자신을 감금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사랑한다면 세계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세계와의 부딪침 속에서 자기 안에 잠재된 것들을 끄집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하기 위해 나를 먼저 사랑할 필요가 없다. 자존감 운운하며 자신을 위로할 필요도 없다. 연인을 사랑하게 되면 자존감 따위 의식할 필요도 없이 나는 나를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오해: 나는 너를 안다


너를 알아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알고 싶어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을 시작했다면, 끝없이 너를 더 알고 싶은 법이다. 롤랑 바르트는 연인을 ‘아토포스(Atopos)’라고 했다. 어디에나 있지만, 또 어디에도 없는 존재.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지만 또 어느 순간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은 존재. 아토포스는 ‘아토피’와 같은 어원을 갖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이상한 존재’다. 연인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만큼 신비로운 존재가 연인이다.

만약 연인이 “나는 너보다 너를 더 잘 알아” 확신에 차 말한다면 감격하지 말라, 칭찬도 하지 말라. 우리는 그 확신을 더 강화시킬 것이 아니라 무너뜨려야 한다. 당장 연인은 그것을 불편해하겠지만, 그 불편함은 점점 더 사랑으로 바뀔 것이다.



세 번째 오해: 연인을 배려하라


사르트르가 말한 사랑의 시작과 종결은 이러하다. “나는 ‘주체’로서 너를 사랑했다, 너는 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스스로 ‘객체’로 전락했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할 수 없게 됐다.” 사랑할 때 결정적인 실수는 내가 너의 욕망대로 ‘연기’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연인을 배려하기 위해서 연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미리 알아서 준비한다. 그것이 정말로 연인이 원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연인이 원한다고 생각하고 내 멋대로 ‘폭력적으로’ 그걸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게다가 그 배려 때문에 나는 점점 더 예측가능한 인간이 되고, 연인은 나를 더 단순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나의 매력이 더 이상 연인에게 발견되지 않을뿐더러, 연기를 하다 보면 나도 내가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간다.

사랑하기 위해선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더 계발해야 한다. 수많은 ‘부캐’가 내 안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나의 이 다양한 캐릭터는 사랑의 자양분으로 쓰일 것이다. 일부러 부캐를 꺼내려고 할 필요도 없다. 내가 연인과의 관계에 매 순간 몰입한다면 나도 모르게 내 부캐는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나의 연인의 부캐도 만나게 될 것이다. 사랑은 더 풍성해질 것이다.



네 번째 오해: 짝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내 감당치를 다소 초과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짝사랑은 아니지만, 마치 짝사랑할 때처럼 조금 아프다. 이 아픔은 내가 연인을 사랑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처음에 연인은 감당 불가였다가 결혼 경력이 더해지면 감당할 만하게 되었다가 드디어 감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변한다. 상대의 탓만이 아니다. 내 탓만도 아니다. 상황의 탓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이 더해져서 화학작용한 결과다.

짝사랑은 아프다. 결혼 경력자에겐 이 사랑의 ‘아픔’이 희소할 것이다. 사랑은 부부 사이 필수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아서 더 편하기도 하다. 그러다가 문득 허전하고 허탈해진다. 편안함이 무력감으로 변한다. 아련한 아픔이 없어서다. 짝사랑을 닮은 사랑이야말로 ‘사랑’이다. 내가 온전히 정복할 수 없는 것, 늘 내 기대를 조금 넘기는 것, 나를 질문하게 하고, 그 사람 앞에 있는 나를 스스로 낯설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사랑이다.



N번째 오해: 사랑은 사랑다워야 한다


사랑에 대한 이 모든 오해를 뒤로하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마지막 오해가 있다. 사랑하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오해. 사랑엔 소위 국룰이 없다. 우리가 드라마에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본 것만 사랑의 범주에 넣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랑은 ‘사랑의 모방’이다. 이 모방은 시청자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사랑은 빤하지 않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뜬금없는 방식으로 우리는 번개를 맞듯 사랑을 느낀다. 번개를 맞고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나오고, 그런 나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사랑이다.

사랑하면 행복하다. 우리가 다 알듯, 행복은 기쁨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아름다운 슬픔도 행복이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슬픔 어린 행복이 느껴지지 않던가. 아프더라도, 그 아픈 행복 때문에 우리는 사랑이 있는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문학에서 사랑의 기술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추천도서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

저자 강신주 / EBS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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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교 철학의 핵심을 담은 여덟 단어와 동서양 철학, 문학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사랑에 관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게 하고, 사랑과 아낌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EBS [CLASSⓔ]에서 총 16회에 걸쳐 방송된 <한 공기의 사랑, 아낌의 인문학>과 동시 기획되어 출간되었으며, 방송에서 나아가 한층 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올 어바웃 러브(All about Love)

저자 벨 훅스 / 책읽는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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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잇는 21세기 유일한 사랑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 벨 훅스는 아직도 우리가 ‘사랑에 빠진다’는 환상에 매달리는 까닭은 그것이 ‘의지로 사랑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사랑에 대한 교육은 사랑이라는 말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 시작돼야 하며, 사랑을 향해 떠나는 여행에서 중요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라 강조한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 수잔 존슨 / 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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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직접 만나서 교류하고 교감하는 데 소홀해지며 정서적으로 점점 고립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시대의 사랑은 이중성을 지닌다. 한쪽에서는 사랑에 쿨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에 집착한다. 이 책에서 세계적인 관계 회복 심리학자 수잔 존슨은 사랑을 하고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이 사랑을 멈추게 하고 지속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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