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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인터뷰]
서체 디자이너가 바라본 한글의 매력

서체 디자이너 한동훈 인터뷰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감을 때까지 다양한 글자를 본다.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 하지만 글자(서체)가 주는 뉘앙스와 힘은 각양각색이다. 특히 많은 글자 중 한글은 명료하면서도 다양함을 표현하기가 좋은 서체로 많은 사람들, 서체 디자이너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한글의 매력에 빠져 서체 디자이너가 된 한동훈 작가를 만나 한글의 매력을 들어봤다.




 Q.  서체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정확히 무엇일까요? 

서체 디자인은 한마디로 문화를, 즉 현대 사회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현대인은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학교에서, 회사에서, 퇴근 후 책을 읽고 드라마, 예능을 보고 유튜브를 볼 때 디자이너가 만든 수많은 레터링과 디지털 폰트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오직 소통만을 위한 글자도 있고, 좀 더 나아가서 읽기 위한 글자가 아닌 보기 위한 글자, 멋을 부린 글자도 있습니다. 서체 디자이너는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그 모든 글자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입니다. 



 Q.  서체 디자이너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대학교 관련 학과(시각디자인)에 입학해서 여러 분야를 탐구하던 중, 서체 디자인 수업을 듣고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체 디자이너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교과서 같은 책인 <한글의 글자표현>(김진평 저. 미진사)속의 명조체와 고딕체 도판이 아름답게 여겨졌고, 저도 한번 이런 드로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흑과 백, 블랙&화이트가 서로 변하면서 생기는 무한한 조합과 조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 시각디자인의 근본이고 시작이라는 점에서 한번 직업으로 삼아볼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Tlab월광포르테는 베토벤이 작곡한 월광소나타 3악장의 강렬한 리듬에서 모티브를 딴 가로 세로 획 대비가 강한 명조 계열 서체이다.



 Q.  특히 한글을 사랑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느끼는 한글의 최대 매력을 말해 보자면 일단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이 있습니다. 기초가 되는 자음, 모음의 디자인은 몸의 각 부분과 하늘, 사람, 땅에서 따왔습니다. 그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기하학적인 자음과 모음이 분해 조합되면서 낱자를 만듭니다. 그런 단순성과 명쾌함이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다른 문자와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역시 창제 인물과 그 의도, 시기가 모두 규명된 또 그것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된 세계에서 유일한 문자라는 것도 매력이죠. 세종대왕은 알고 보면 가장 위대한 창작을 해낸 디자이너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막연하게 ‘과학적이다’ 정도로 많이 알고 계시지만, 파고들면 들수록 깊이 있는 문자가 한글입니다.



 Q.  서체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아무래도 제가 디자인한 서체가 각종 매체나 광고 등에서 사용되는 장면을 볼 때가 아닐까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포스터, 편집물, 방송, 유튜브 등에 잘 적용한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한글 디자이너로서 최소 2000자, 최대 11172자가 넘는 글자를 디자인해야 하는데 처음 10여 자의 시안이 주는 인상이 최종 서체에 그대로 구현된 것을 볼 때도 기분이 좋아요. 또, 테스트하면서 제가 만든 글자들이 단어를, 문장을 이루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획과 획이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면서 춤추는 듯한 인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듭니다.



 

Tlab사이키델릭은 여름, 음악, 스포츠 같은 키워드에서 모티브를 얻은, 회사에서 개발해 출시한 Inline 서체이다. 

사이키델릭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환각적인 인상을 추구한다. 



 Q.  평소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그리고 서체를 만드실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영감을 얻는 대상은 다양한데,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제 발상은 노래에서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노래의 전체적인 느낌이나 특정 가사에서 느껴지는 것을 시각화해보고 싶다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있고요. 노래뿐 아니라 인상깊게 다가온 계절, 음식, 사물을 시각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음식이 떡볶이라면 두껍고 부드러운 획에서 출발하겠죠? 근데 그냥 두껍고 부드러우면 이제는 흔해져서 싫어. 그럼 안쪽을 비워 볼까? 하는 식으로 이것저것 시도해 봅니다. 두 번째는 다른 문자 문화권의 폰트에서 개성적인 부분을 봤을 때 저걸 한번 한글로 번역해 보고 싶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체를 만들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가, 각, 간, 갈 ··· 힛, 힝, 힣 등 전체 글자가 최대한 일정한 규칙 안에서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알파벳이나 다른 문자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자의 획은 너무 날카롭거나 위태롭지 않은, 안정적이고 단단한 쪽을 추구합니다.



 Q.  평소에 음식과 서체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서요?

요리에 큰 소질은 없지만, 주로 밥이 들어간 종류를 좋아합니다. 볶음밥이나 쌈밥 같은 것들요. 고깃집에 가도 밥은 꼭 시켜 먹는 편입니다. 창작자는 바빠서 챙겨 먹을 시간이 없을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잘 먹어야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고 에너지가 생기더라고요. 이번에 인터뷰를 위해 대상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는데 바쁜 와중에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여러 라인업이 있더라고요. 꼭 한번 먹어볼 예정입니다. 공교롭게도 항상 하던 생각이지만, 서체도 취향 대로 골라 선택할 수 있고, 고른 서체가 지면이나 컨텐츠의 인상을 좌우하며 빛내준다는 점에서 어쩌면 음식과 비슷한 면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Q.  직접 쓰신 <글자 속의 우주>는 어떤 책일까요? 

<글자 속의 우주>는 글자마다 안에 숨겨진 많은 이야기가 있어 하나의 우주에 비유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인데요. 주로 제가 찍거나 캡처하는 방식으로 수집한 글자 이미지에 대한 감상을 얘기하고, 전문가의 관점으로 본 각종 해설을 덧붙인 내용입니다. 뒷부분에는 서체 디자인에 대한 좀 더 전문적인 얘기도 담겨 있습니다. 서체 디자인과 관련 없는 일반 독자부터 현업 서체 디자이너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글을 담았습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서체 디자이너로서 가장 가치 있는 목표는 개성 있고 아름다운 디지털 폰트를 꾸준히 출시하는 것입니다. 서체 디자인은 정년이 따로 없고 한 해 한 해 경험이 쌓일수록 가치 있는 작업을 할 확률이 높아지는 분야입니다. 한글뿐 아니라 모든 문자를 사랑하는 만큼, 앞으로 가능한 한 많은 문자 디자인의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런 실무 작업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강의와 저술로 꾸준히 나누고 싶다는 것이 현재의 생각입니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라는 자세로 꾸준히 활동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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