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방황"
인문학은 삶의 구석구석 작동한다. 인문학의 어원 ‘후마니타스(Humanitas)’에서도 알 수 있듯, 인문학은 ‘인간’을 사유하고 그 결과를 실천하는 것이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만이 인문학은 아니다.
불편하고 이상한 문제제기
인문학을 ‘제대로’ 하면 남들이 좋다고, 옳다고 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게 된다. 그렇다고 무례하게 문제제기를 해대지도 않는다. 그 또한 비윤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객관적 시점으로 보면 인문학 몰입자는 좌중에 가장 불편한 존재가 돼버리고 만다.
세상이 주식에 열광할 때에도 인문학 몰입자는 불편한 문제제기를 한다. ‘동학개미운동’이란 표현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영끌’과 ‘빚투’로 뭉친, 사익을 위한 개인투자자들의 집단적 행동에 공익을 위한 ‘동학농민운동’의 이름을 붙여도 되는가 하는 의혹.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용어는 분명 착시효과를 만들었다. 떨어지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 함께 힘을 모아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 실은 시장교란 행위라는 진실을 은폐시켰다. 매체에서는 ‘주식의 신’이 등장하고(그는 ‘존봉준’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씀’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인문학은 이 모든 현상을 ‘이상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주식에도 인문학이 있는 것이다.
다이어트에도 인문학이 있다. 인문학을 하면, 욕구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이어트 할 때 먹방을 보는 매커니즘도 이해하게 된다. 그건 ‘대리만족’이 아니라 ‘불만족을 향유’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 향유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보상 받는 과정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나는 절제하고 있다’는 도덕적 우월감이 먹방을 보는 내내 자신을 고양시 킨다. 이렇게 사사건건 해석하게 되니, 다이어트가 잘 될까? 잘 된다. 다이어트는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해야만 성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유하면 방황한다
사유하면 방황하기 마련이다. 방황은 더 많이, 더 깊게, 더 넓게 하는 것이 ‘차선’이다. 최선이 아닌 이유는 인문학을 하는 방법이란 것이 ‘최선’의 경지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충실하게 ‘더’ 방황할 수 있을 뿐이다. ‘방황’은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도 나온다. “노력하는 이가 방황하느니라.” 이 문장은 무려 신(神)의 대사였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철학이 시작된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혼란스럽다면 우울증이나 번아웃을 치료해야 할 때가 아니라, 인문학을 시작해야 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인문학을 하면 확신이 사라진다. 예전에 확신했던 것들이 확증편향이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굳건한 확신은 불안이 만든 확증편향이었던 거다. 믿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계속 그 확증편향을 더 굳히게 되는 데이터를 모았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알고리즘은 그 확증편향을 더 공고히 했었다는 것도 알아채게 된다.
‘왜?’라는 질문은 인문학이 된다
확증편향에서 벗어나면 단언이 아니라 질문을 하게 된다. 인문학은 답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바꾼다. ‘어떻게 부자가 되지?’라는 질문이 ‘돈이란 대체 뭐지? 나는 왜 돈을 욕망하지?’로 바뀐다 ‘어떻게 하면 예뻐질까’가 아니라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얻게 된다.
인문학을 하면 힘들다. 차라리 무지의 상태가 더 마음 편할 수 있다. 살던 대로, 하던 대로, 그게 편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말한 ‘열정적 무지’를 지키는 사람이 많은 이유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알면 다친다. 모르기 위해서는 수시로 자기기만이 필요하다. 문득문득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질문과 의혹을 모르는 척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번도 인문학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으로 끝낸 사람은 없다.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것이 인문학이다.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도 인문학이다.
인문학의 부산물
인문학은 분명 남도, 자신도, 불편하게 만든다. 답이 아니라 질문을, 확신이 아니라 방황을 주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우라(aura)를 부산물로 얻는다. 아우라란 다른 이는 모방할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를 뜻한다. 의료적 처치는 아우라를 삭제한다. 미학적 안목이 없는 사람이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가 맹목적인 안티에이징 성형이다. 바로 이 의료적 처치 때문에 스스로 자신의 아우라를 박탈시킨다. ‘아우라’를 안다면 무조건적 인 성형은 선택하지 않게 된다. 인문학은 외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우라다. 만약 누군가 내게서 아우라를 느낀다면 그 사이에 우정 도 시작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에게서 아우 라를 포착한다면 특별한 사이가 될 것이다. 돈과 지위도 사람을 모으지만, 그들은 ‘나’가 아니라 ‘돈’과 ‘지위’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모으지 않고 만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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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질문을 통해 인문학을 향유하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추천도서
통찰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공부법
저자 안상헌 / 북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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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인문학에 입문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삶의 의미를 새롭게 찾고자 하는 사람 들, 인문학의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 이들, 그저 공부가 좋아서 책을 드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인문학을 어떻게 시작하고 지속할 것인지를 자세히 안내한다.
사물의 철학
저자 함돈균 / 세종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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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시작해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 사물의 철학은 늘 사물에 둘러싸여, 그 사물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우리지만, 한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근본적인 질문 ‘사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흥미롭고 의미 있는 답변들을 들려준다. 사물에 대한 고정적 시선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생각의 지도가 펼쳐진다.
인문학의 숲
저자 송용구 / 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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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중에서도 고전이라 할 만한 33권의 동서양 명저들을 어떤 포인트로 읽고 해석하며 적용할지 안내해주는 친절한 해설서이다. 어려운 고전 읽기에 도전하는 모든 독자에게 길잡이가 될 뿐만 아니라, 시대를 읽는 눈을 뜨게 하며 소음과 잡음 이 난무한 혼란의 시대에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근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