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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트렌드]
대중문화 속 그 음식

우리들의 블루스 속 동석의 된장찌개



“참나, 된장 싫어하는 사람도 다 있네.”

홀로 식당을 찾은 남자. “우리 집은 된장 잘해요”라는 주인에게 “된장 안 먹어요. 김치찌개.”라며 퉁명스레 주문하자 주인이 뱉은 말이다.


익숙한 하지만 특별한 음식, 된장찌개 

음식은 지독하게 배타적인 문화를 품고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느냐 못 먹느냐는 그 문화를 뼛속까지 체득한 사람인가 아닌가, 다시 말해 ‘우리’인가 아닌가를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김치를 못 먹는 한국인이 있다면 대번에 “한국사람 맞아?”라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반대로 김치와 된장찌개를 잘 먹는 외국인은 “한국사람 다 됐다”는 칭찬을 듣는다. 

한국인에게 된장찌개는 그런 음식이다. 한국사람이라면 싫어할 수 없는, 아득한 옛날부터 늘 한국인의 밥상 한가운데에 자리해 온 익숙한 음식. 전국 팔도 어디를 가도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달라질지언정 쉽게 찾을 수 있는 음식이 된장찌개다. 

된장이라는 재료에 제철 나물이나 지역의 특별한 식재료가 들어가면 단박에 별미로 변신하는 게 된장찌개다. 없으면 없는대로 그저 된장을 푼 물에 집에 있는 채소와 두부 한 모만 넣어도 맛있는 된장찌개 완성이다. 이렇듯 된장찌개는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고향의 맛, 추억의 맛으로 우리의 기억에 남아 집요하게 전승되고 있다. 

드라마 속 동석(이병헌 분)에게도 된장찌개는 그런 음식이다. 하지만 모진 인생의 굴곡에서 그는 ‘된장찌개를 안 먹는 이상한 사람’이 됐다.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과거의 아픈 기억

고등학생 시절 제주 집에서 돈과 폐물을 들고 육지로 도망친 동석은 이리저리 ‘굴러먹다’ 제주로 돌아와 트럭에 온갖 물건을 싣고 떠도는 만물상으로 살고 있다.

그의 어머니 옥동(김혜자 분)은 젊은 시절 바다에서 남편과 큰딸을 잃었다. 남편은 뱃일을 하다가, 큰딸은 해녀로 물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옥동은 남편 친구의 첩으로 들어간다. 첩살이를 자처한 건 하나뿐인 아들의 입에 밥을 넣고, 학교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자신을 끌고 남의 집살이로 들어간 것이 동석에겐 견디기 힘든 상처였다. 자신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친구와 한방을 쓰는 어머니를 보는 사춘기 아들은 엄마에게 ‘남자 없이 못 사는’ 사람이라는 원망의 낙인을 찍어 버린다. 외톨이처럼 방황을 이어가던 동석은 집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들고 도망쳐 버린다. 도망치기 전 엄마에게 “같이 서울 가서 살자”고 애원하지만 옥동은 그와 함께 떠나지 않는다.



 


지난 과오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은 모자의 여정 

세월이 흘러 다시 제주에서 만난 모자는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서로의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 옥동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동석은 옥동의 부탁으로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함께 떠난다. 옥동은 자신을 반기지 않는 본처의 큰아들이 있는 목포로 그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러 간다. 이런 옥동을 보는 동석은 원망과 답답함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에겐 옥동을 따라나선 이유가 있다. 옥동이 죽기 전에 물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목포 여정에서 동석은 옥동에게 참았던 원망을 쏟아내며 “자신에게 미안한 줄은 아느냐”고 따진다. 그리고 “남자 없이 못 살겠더냐”며 모진말을 던진다. 잠자코 듣고 있던 옥동은 이내 “니 어멍은 미친년이라. 미치지 않고서야. 그저 자식이 세 끼 밥만 먹으면 사는 줄 알고. 좋은 집에 학교만 가면 되는 줄 알고. 멍청이처럼 바보처럼. 자식이 맞는 것 보고도 멀뚱멀뚱. 개가 물어뜯을 년”이라 말한다. 속내를 알 수 없던 옥동의 절절한 사과인 셈이다.


 


화해와 용서와 치유 그리고 된장찌개 

누구에게나 사무치게 그리운 음식이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어떤 음식은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진다. 또 어떤 음식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치유의 길로 이끈다. 동석이 다시 된장찌개를 먹던 날 그는 비로소 오랜 원망에서 해방되며 치유된다. 오랫동안 된장찌개를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다. 동석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된장찌개는 어멍이 끓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사랑이 너무 그리워서 그는 된장찌개만 봐도 화가 났다.

엄마와의 짧은 목포여행을 마치고 제주로 돌아온 동석이 미워서 보기도 싫던 된장찌개가 다시 먹고 싶다고 말한다.



 



“내일 된장찌개 끓여놔요. 먹으러 올게.”

“싫다며. 된장찌개?” 

“엄마가 끓여준 건 맛있어. 다른 건 맛이 없어서 안 먹은 거야.”


옥동은 된장찌개를 끓여달라는 아들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밥을 지었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상 한가운데 올려 두고 편안히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사랑한단 말도 미안하단 말도 없이 내 어머니 강옥동 씨가 내가 좋아했던 된장찌개 한 사발을 끓여놓고 처음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셨다. 죽은 어머니를 안고 울며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 이 사람을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었단 걸. 난 내 어머니를 이렇게 오래 안고 지금처럼 실컷 울고 싶었단 걸.”



 




◆◆◆


 

우리들의 블루스 

넷플릭스 TVING(티빙) 

연출 김규태 

극본 노희경 


2022년 방영된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의 사연을 옴니버스로 담은 20부작 드라마다. 제주의 진한 공동체 문화 안에서 각자의 상처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화해와 치유 스토리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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